항목 ID | GC04500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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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貞徹 |
이칭/별칭 | 채씨(蔡氏)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53년 6월 26일 - 최정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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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최정철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최정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최정철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최정철 출생지 - 충남 천안군 갈전면 가전리 99번지 |
활동지 | 천안 아우내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3·1 운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최정철(崔貞徹)[1853~1919]은 1853년 6월 26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지금의 병천면(竝川面)] 가전리 9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 외 가계나 학력 등은 알 수 없다.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서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의 장날을 기하여 발발하였다. 조인원 등 거사를 준비했던 사람들은 3월 31일 밤 자정에, 아우내 장터를 둘러싸고 천안 길목[목천넘어 고개]과 수신면 산마루, 진천 고갯마루에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놓고 이튿날 아침 아우내 장터로 몰려갔다.
오후 1시경 태극기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최정철을 비롯한 군중들은 이에 호응하여 소리 높여 만세를 불러 시장 안은 삽시간에 흥분의 도가니로 빠졌다. 그 동안 군중에게는 태극기가 나뉘어졌고 군중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선두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헌병들은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렀다. 이날 도합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적어도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오후 4시경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헌병에게 큰소리를 내고, 주전자를 집어 던지고, 유치장 벽에 발길질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항의를 하였다. 군중들은 헌병들의 총부리에 달라붙고 탄약갑을 잡아당기면서 격투를 벌였다. 이때 일본 헌병들이 또 다시 발포했고, 이로 인해 최정철의 아들 김구응이 현장에서 총을 맞고 쓰러졌다. 일본 헌병은 야만무도하게도 김구응의 두개골을 박살냈고,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최정철이 아들의 시체를 안고 통곡하였다. 최정철마저도 일본 헌병의 진압에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