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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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燦燮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 홍찬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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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원곡면사무소 앞 독립 만세 시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58년 - 홍찬섭 사망 |
출생지 | 홍찬섭 출생지 -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운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홍찬섭(洪燦燮)[1889~1858]은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출신이나 경기도 안성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찬섭의 경기도로의 이주나 그의 가계, 학력 등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활동 사항]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元谷面) 가천리(加川里)에서 한 주민이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인근 각지의 주민들이 집합하여 삽시간에 수천 명에 달하였다. 홍찬섭은 최은식과 함께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며 선언식을 하였다. 선언식이 끝나자 홍찬섭은 주민들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에 불을 지르고, 다시 양성면(陽城面)으로 가서 그곳의 면장들과 합세하였다. 홍찬섭 등은 양성면의 주재소와 우체국 건물은 나중에 신국가가 건설되면 사용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대로 둔 채 문서과 기구만을 불지르고 폐기시켰다. 또한 일본 자금업자였던 융부지(隆偩知)의 상점을 파괴하고 해산하였다.
홍찬섭은 이 시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기묘하게 탈출하여 상해로 갔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독립 선전원으로 입국하여 활동을 하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홍찬섭은 상해 임정의 활동 외에 이전의 원곡면 만세 시위 운동까지 포함하여 전체 7년형을 받고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