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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002
한자 金鼎鎬
이칭/별칭 김승호(金昇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내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김정호 징역 7년형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김정호 징역 1년 6개월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55년연표보기 - 김정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2년 - 김정호 건국 공로 훈장 추서
출생지 김정호 출생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독립단원|광복회원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정호(金鼎鎬)[?~1955]는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 출신으로, 군자금 모금과 광복회 활동에 힘쓰다가 체포되어 7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김정호의 다른 이름은 김승호(金昇鎬)이다. 양성읍[현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에서 청년들을 모아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군청과 경찰서를 불사르고 일본인을 희생시켰다. 그 후 상해 임시 정부의 명을 받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독립단원으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다시 독립 자금 모금의 책임을 지고 국내로 밀입국하여 광복회원이 되었고, 서울 중앙 우체국에서 홍찬섭과 함께 5만 원 상당의 금액을 탈취하는 데 성공하였다. 청주에서는 부호 민 모에게 독립 자금을 요구하다가 일본 경찰의 추격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울로 도망하여 숨어 있다가, 1927년 체포되어 7년의 징역을 살았다.

이들 광복회 회원들은 악독한 고문에도 애국지사의 명단이나 투쟁 내용을 일체 발설하지 않았고, 투철한 애국심으로 법정 투쟁을 전개하며 군자금을 지원한 인사의 이름도 함구하였다. 일본 경찰은 연루자를 찾기 위하여 온갖 악형을 가했고, 이들 독립회원들은 출옥 후 고문의 휴유증으로 대부분 요절하였다.

김정호는 출옥 후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으로 다시 6개월의 옥고를 치렀으며, 1942년 상해 임시 정부의 밀령으로 중국을 벗어나다가 신의주에서 체포되어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정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 공로 훈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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