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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 형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080
한자 許商兄弟
이칭/별칭 허상·허주 형제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선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양천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활동 사항]

허상(許商)과 허주(許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허상의 나이 열 살에 아버지가 죽자 형제는 슬퍼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고, 상례를 성인과 같이 하여 마을 사람들이 칭송하였다고 한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 또한 지극하여 어머니가 등창이 나서 음식을 먹지 못하자 마을의 부인들에게 젖을 얻어다 드리고 밤낮으로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 치료하였다. 어머니가 중병이 들자 사람들이 이르기를 “집을 떠나 있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형제가 직산으로 가서 움막을 지어 놓고 교대로 어머니를 업고 산속을 다니니 병세가 완쾌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등에 업고 영남 지방으로 피난을 가서 걸식을 다니면서도 봉양과 약물의 준비가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다. 어머니가 팔순이 되어 병세가 위중하자 대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으며, 대신 앓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바쳤으나 결국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삼 년 동안 정성껏 시묘 살이를 하였는데, 움막에 물이 없어 하루는 근처의 땅을 팠더니 물이 솟아 나와 사람들이 이 샘을 ‘효자 샘’이라고 하였다. 3년 후에 샘이 말랐는데 허주가 죽어 장사를 지내던 날에 물이 다시 솟아서 사람들이 회를 버무리는 데 그 물을 썼다. 그 뒤 샘이 다시 말라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황곡립은 「목악고사시」에서 “허공이 지순한 효성으로 정성을 다하니 여막 곁의 마른 샘에 물이 콸콸 솟아나네.”라고 하였다.

[상훈과 추모]

숙종허상은 공조 정랑에, 허주는 의금부 도사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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