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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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仁碩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봉황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종식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김지(金砥)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김인석(金仁碩)[1735~1773]은 아버지가 병이 들자 눈 오는 밤에 목욕재계하고 홀로 만뢰산(萬雷山) 기슭으로 가서 하늘에 치성(致誠)을 드렸는데, 제사가 끝나자 호랑이가 두 마리가 집까지 호위하였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를 장사지내는 날에는 한 떼의 까마귀가 상여를 따라가서 장례를 마치자 흩어져 날아갔으며, 아버지의 산소가 십 리나 떨어져 있는데도 아침저녁으로 찾아가 곡하고 절하는 일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국상(國喪)에는 사흘 동안 산에 올라가 곡을 하고 3년 동안 소복(素服)을 입었다.
1773년 김인석이 죽자 조정에서는 정려를 내리고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하였다.. 당시 목천 현감 권준(權晙)은 김인석의 행장에서 “호랑이는 부자의 어짊이 있고 까마귀는 효도새의 이름이 있는 것이니 실은 이 모두가 효성에 감동한 소치이다.”라고 적었다.
[상훈과 추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봉항 1리에 김인석 정려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