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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955
한자 平常服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집필자 최규순

[정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일상생활에 입는 옷.

[개설]

천안 지역의 복식은 마한과 백제의 복식에서 근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조선 시대까지 관복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에 비해 민간의 옷에서는 우리나라 전통의 형태가 계속 유지된다. 전통 복식의 기본형은 남자는 머리에 관모나 건(巾)을 쓰고, 엉덩이를 덮는 정도의 저고리에 바지를 입는 것이다.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를 입는다.

[변천]

천안시는 교통의 요지이고 서울특별시와 가까워 직업인과 학생이 많았다. 그래서 문화의 유통, 발전이 빠른 지역이다. 복식 역시 근대에 서구 문화의 영향을 빨리 받아들였고, 서울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아동복]

기저귀감은 새로 구입하기보다 아이에게 좋다고 하여 시집올 때 함을 지고 온 천을 이용한다. 포대기는 소창으로 만든다. 친정이 부유하면 외할머니가 포대기를 사다주기도 한다.

태어난 아이에게 처음 입히는 옷인 배냇저고리는 소창이나 융(絨)으로 만든다. 배냇저고리는 옷깃이 없고, 옷고름 대신 실을 매단다. 첫째가 입던 것을 동생들이 대물림을 하는데, 여자가 입던 것을 남동생에게 입히지는 않는다. 첫아들의 배냇저고리는 남을 주거나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두었다가 시험을 볼 때나 재판이 있을 때에 가져가면 효과가 있다고 여긴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외가에 나들이를 갈 때는 아이의 옷깃 뒤에 고추를 꿰어서 간다. 이렇게 해야 잡귀가 붙지 않고 아이가 탈이 나지 않는다.

아이의 명(命)이 짧다면 다른 사람에게 명을 판다. 명을 산 사람을 시영어매나 시영아배[수양부모]라고 부른다. 수양부모는 수양자의 나이를 따져 보아 운이 맞는 사람으로 선택한다. 광목으로 전대를 만들어 쌀을 넣어서 수양부모를 찾아가면, 부모는 아이에게 밥그릇을 선물로 준다.

[성인복]

해방 이전 남자와 여자들은 주로 한복을 입었으며, 여자보다 남자가, 농촌보다 도시가 먼저 외래 복식을 빨리 받아들였다. 사회 활동을 하는 신여성이나 교회의 전도 부인들은 흰색이나 검정색 저고리에 어깨허리를 달고 4~5㎝의 주름을 잡은 검정색의 짧은 통치마를 무릎에 닿게 입었다.

해방 이후에 천안시도 서울특별시나 다른 충청남도 지역의 일반적인 복식 흐름에 맞춰 변화해 간다. 1947년 양면과 양말 기계의 국산화로 메리야스 등 직물의 보급이 원활해졌다. 6·25 전쟁 이후에는 양장 패션이 본격화되었고, 구호물자로 들어온 광목은 국내 목화 생산과 무명 짜기의 감소를 초래하였다.

1950년대의 한복은 저고리 길이가 허리까지 길어졌고, 치마는 발목이 보일 정도로 짧아졌으며, 일상복보다는 명절이나 예복으로 주로 입었다. 이후 주름치마, 맘보바지 등이 유행하였고, 군용 자동차 타이어로 만든 신도 유행하였다. 1957년 나일론이 보급되면서 속옷까지 질기고 가벼운 나일론을 썼다. 남자는 옷감 부족으로 군복이나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옷감, 밀수품, 구호품 복지 등으로 옷을 해 입었다.

1960년대는 섬유 산업의 등장으로 양복이 일상복으로 자리를 잡았고, 농촌에서도 양복 착용이 보편화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이 수출로 인해 의류 산업이 급성장하고 기술과 설비의 현대화와 자동화로 제품의 고급화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에는 컬러 TV 보급, 해외 브랜드 도입, 교복 자율화 등으로 캐주얼 브랜드가 급증하며 개성, 여유, 풍요로움을 추구하여 자유로운 스타일의 옷이 발전했다. 1990년대에는 질적 성장이 두드러지고, 개성화와 다양화가 추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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