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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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鳴洞-男根- |
이칭/별칭 | 남근 바위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봉명동 1통 |
집필자 | 남향 |
현 소재지 | 봉명동 개목 남근 바위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봉명동 1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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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선돌 |
크기(높이, 둘레, 길이) | 1.78m[높이]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봉명동 개목 마을에 있는 선돌.
[개설]
봉명동 개목 마을은 봉서산(鳳棲山) 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개목’은 마을의 지형이 개미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봉명동 개목 남근 바위는 개목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남근(男根)을 닮았다 하여 ‘남근 바위’로도 불린다.
[위치]
봉명동 개목 남근 바위는 처음 백석동의 어느 절터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300년 전인 1700년대쯤 개목 마을 입구로 처음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 뒤 1970년대 후반에 토지 구획 정리로 천안 시청 앞마당으로 옮겨졌다. 이곳에도 오랜 기간 있지 못하고 다시 천안 삼거리로 위치를 옮겼다.
남근 바위를 다른 지역으로 옮긴 후로 마을에 변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고민 끝에 남근 바위를 마을에 돌려줄 것을 건의하여 1990년대 초에 지금의 봉서산 부근으로 옮겨 놓았다. 남근석 옆에는 에덴 조경사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규모가 작은 선돌을 함께 세워 두었다.
[형태]
남근 바위는 이름처럼 실제 남근(男根)을 닮았다. 크기는 1.78m로 어른 키만 하다. 기단부터 꼭대기까지 일정한 둘레로 곧게 뻗은 화강암 재질의 선돌이다. 자연석에 인공적인 수법을 가하여 만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상부는 남근의 귀두부를 연상하게 한다. 약 35㎝ 지점에 경계선이 도드라져 있고 그 위쪽은 ‘거북의 머리’처럼 솟아 있다. 무엇 때문인지 상부의 귀퉁이 일부가 깨져 있다.
남근 바위 앞에는 상석(床石)을 만들어 두었다. 아들을 낳길 소원하는 부인들이 치성을 드렸던 곳이기에 제물을 진설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의례]
마을에서 정기적으로 남근 바위에 정성을 드렸다는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이 바위가 없어지고 난 뒤에 마을에 변고가 끊이지 않자 다시 찾아오려 했던 주민들의 행동을 통해서 바위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남근 바위는 아들을 낳으려는 부인들의 치성터이기도 하였다. 항간에는 남근 바위에 올라타 앉았다가 내려와서 정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하여 찾아오는 부녀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남근 바위는 아들 비는 바위인 기자석(祈子石)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갖게 한다는 소문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는 바위를 일본으로 밀수하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다.
[현황]
개목 마을에는 현재 원주민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주민들 중 남근 바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안내문이나 보호각도 없이 봉서산 기슭에 덩그러니 남겨져 방치된 느낌마저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