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020 |
---|---|
한자 | 桃源里彌勒-彌勒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의례 장소 | 미륵제 제장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 미륵댕이 마을 입구 |
---|---|
성격 | 민간 의례|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초아흐렛날[음력 1월 9일] |
신당/신체 | 선돌형 미륵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에서 매년 정월 초아흐렛날 농사의 풍년과 무사태평을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
[개설]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의 미륵댕이 마을에는 수호신으로 모시는 선돌형 미륵이 한 기 있다. 매년 정월 초아흐렛날[음력 1월 9일] 마을의 부녀자들과 인근 사찰의 스님이 함께 미륵제를 지낸다. 제수 비용은 부녀자들이 쌀과 돈을 나누어 내어 부담하는데, 이 돈을 사찰에 가져다주면 그 절에서 떡, 삼색과실, 포, 술 등 제물을 준비한다.
[연원 및 변천]
도원리 미륵댕이 미륵제의 연원을 살펴보려면 약 100여 년 전[2012년 기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본래 이 미륵은 논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돌이 있어 파 보니 미륵을 닮은 돌과 함께 그 밑에 반석이 나왔다. 이에 마을에서는 이 돌을 미륵으로 여기고 위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마을 주민 중 김경훈이라는 사람이 후사를 두지 못하여 걱정이 태산 같았다고 한다. 그 부인이 날마다 밥을 지어 미륵 앞에 가져다 놓고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김경훈과 그의 아내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미륵신이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갓이 없어 마을 밖 출입을 할 수 없으니 갓을 하나 지어 주면 소원대로 아들을 점지해 주겠다.”라고 한 것이다. 이에 부부는 이튿날 갓 모양의 돌을 미륵 위에 올려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날부터 부인이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으며, 아들의 생년월일은 1905년 9월 18일이고 이름은 김진택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이 미륵은 영험하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아들을 낳지 못한 많은 부녀자가 찾아와서 기도하였다. 병천면에 사는 한 여인은 100일 동안 정성껏 메를 지어 공양을 드린 뒤 아들 쌍둥이를 낳은 적도 있다고 한다.
1980년 즈음에 마을의 어느 사찰에서 미륵이 세워져 있던 논을 사들여 미륵의 자리를 옮기고 매년 제를 지낸다.
[신당/신체의 형태]
도원리 미륵댕이 도로변 입구에 미륵 한 기가 서 있다. 이 미륵은 자연석을 모신 선돌형 미륵이다. 미륵의 좌우에는 작은 돌 하나가 미륵을 모시듯이 각각 세워져 있으며, 미륵 위에는 갓 모양의 돌인 갓석을 올려놓았다. 이 미륵은 본래 논 모퉁이에 세워져 있었는데 마을에 입주한 한 사찰에서 토지를 사들여 미륵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담장을 둘러 모시고 있다.
[절차]
정월 초아흐렛날 오전에 미륵제를 지낸다. 마을의 부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근 사찰의 스님이 제를 주관한다. 스님이 불경을 외고 목탁을 두드리며 마을의 안녕과 각 가정의 무탈함을 축원해 준다.
[부대 행사]
도원리 미륵댕이 미륵제를 마치면 음복을 하고 참석한 주민들은 한 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어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