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0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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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龍洞-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쌍용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향 |
소멸 시기/일시 | 1980년대 - 쌍룡동 줄다리기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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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속놀이 |
노는 시기 | 정월 대보름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쌍용동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던 민속놀이.
[개설]
충청남도 천안시 쌍용동은 봉서산(鳳棲山) 남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쌍용동 주민들은 마을의 안과태평(安過太平)과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바라며 정월 대보름날 모여서 줄다리기를 했다. 집집마다 짚을 조금씩 걷어서 굵고 길게 암수 줄을 만들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 줄다리기를 지속하다가 1980년대 마을이 급속도로 개발되면서 중단되었다.
[연원]
충청남도 천안시 쌍용동에서 언제부터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는지 그 연원을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쌍용동 주민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던 것만은 분명하다. 보통 300여 명 이상이 모일 정도로 주민 참여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고, 흥을 돋우기 위해서 풍물패는 물론이고 무동·광대 등 역할 분담도 이루어졌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천안시 쌍용동에서는 집집마다 짚을 갹출하여 줄을 드렸다. 정월에는 공터에 모여서 줄을 드리는 것이 소일거리 중 하나였는데, 대개 남자들의 몫이었다.
짚이 모이면 ‘가로대’라고 부르는 도구로 지름이 10㎝ 정도 되도록 매우 굵게 줄을 꼬기 시작한다. 크게 암줄과 수줄을 각각 30m 길이로 제작한다. 굵은 줄을 다시 여러 겹 합친 후 암수 줄의 머리 부분은 가는 새끼줄로 여러 겹 감는다. 양 줄의 머리 부분을 흔히 ‘용두’라 표현한다. 마치 두 줄이 용트림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이와 같은 명칭이 붙여진 듯하다.
암줄의 용두는 가운데가 빈 형태로 둥글게 만들고, 수줄의 용두는 암줄에 끼울 수 있도록 곧고 길게 만든다. 암줄과 수줄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에 이를 고정시키는 장치를 ‘비녀목’ 또는 ‘용목’이라 한다. 소나무를 1m 정도 크기로 잘라서 만들어 수줄이 빠져 나올 수 없도록 고정시킨다.
[놀이 방법]
정월 대보름날 저녁이 되면 주민들은 줄다리기를 하기에 좋은 공터로 모인다. 줄을 만든 곳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곳까지 옮기는 것부터 놀이의 시작이다. 주민들이 암수 줄을 어깨에 메고 옮기는데, 양편에서는 풍물을 치면서 흥을 돋운다. 무동들의 흥겨운 춤사위도 볼 만하다.
이때 용두에는 한 명씩 편장이 올라서서 지휘를 한다. 편장이 우렁차게 “술령수~”하고 외치면 군중은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공터에서도 한참 동안 암수 줄이 용두를 맞대고 실랑이를 벌인다.
수줄은 계속해서 암줄의 용두로 들어가려 하고 암줄은 끼워 주지 않으려고 피한다. 그러다가 결국 수줄의 용두가 암줄에 끼워지면 줄이 빠지지 않도록 비녀목을 질러서 고정시킨다.
줄에도 암수 성별(性別)이 있는 것처럼 암줄은 여자, 수줄은 남자들이 당겼다. 삼판이승으로 세 번의 경기에서 두 번을 이겨야만 승부가 난다. 여자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신 때문에 남자들이 일부러 져 주기가 일쑤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보통 민속놀이에서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다리기에 사용한 줄을 마을 입구나 동구 밖에 쌓아 두고 수호신처럼 여겼다. 또한 마을 둑을 막는 물막이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쌍용동 줄다리기가 끝난 이후에 줄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현황]
쌍용동은 천안시 시내에 위치한 지역으로 이미 1980년대 이후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도심 한복판에서 쌍용동 줄다리기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원주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일부 문헌 자료에 파편처럼 흩어진 자료를 토대로 옛 줄다리기의 원형을 찾을 수 있었다.
쌍용동의 줄다리기는 개발되기 이전에 쌍용동 마을에 살았던 일부 주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 앞으로 재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