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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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木州孝女-木州歌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주경미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전해 내려오는 목주녀의 효행담.
[개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전해져 내려오는 목주(木州)[지금의 천안시 목천읍] 효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의붓어머니의 구박을 참고 인내하며 아버지와 의붓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나 아버지마저 의붓어머니의 모략에 넘어가 진심을 몰라주자 딸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노래를 불렀다는 내용이다. 딸이 부른 노래가 바로 「목주가」이다. 『악장가사』, 『시용향악보』 등에 「사모곡(思母曲)」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작자, 연대 미상의 고려 가요를 「목주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목주 효녀의 목주가」는 목천읍에서 오랜 세월 효행의 귀감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천안시에서는 목주녀의 효성을 기리고 「사모곡」을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독립 기념관 입구에 목주가 노래비를 세웠다. 앞면에는 『시용향악보』의 「사모곡」 자형을, 뒷면에는 『고려사』 악지에 실린 「목주가」의 내력을 새겼다.
[채록/수집 상황]
「목주가」는 작품은 전하지 않고 지어진 내력만이 『고려사』 악지(樂志) 삼국 속악 조(三國俗樂條)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악고(樂考) 17권 그리고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18권에 각각 비슷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전한다. 『고려사』에 실린 노래의 제목은 「목주」이고, 『증보문헌비고』와 『대동운부군옥』에 실린 제목은 「목주가」이다. 작품이 쓰인 경위로 미루어 보아 6구체 단련(單聯)의 고려 가요인 「사모곡」과 같은 작품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내용]
목주녀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의붓어머니와 살았는데, 천성이 착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와 의붓어머니를 극진히 공경하였다. 그러나 의붓어머니의 학대는 나날이 심해졌고 아버지도 의붓어머니의 참언(讒言)만을 믿고 목주녀를 학대하였다. 목주녀는 아버지와 의붓어머니의 학대가 심할수록 진심을 전하고자 더 극진히 부모를 공양하였다.
그러나 의붓어머니에게는 아무리 봉양을 잘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전처소생이 못마땅하고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의붓어머니에게 푹 빠져서 비위 맞추기에만 급급해 딸은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 아버지와 의붓어머니는 목주녀를 내쫓기로 합의하였다. 그래서 목주녀에게 있지도 않은 죄명을 씌워 집에서 내쫓으려 하였다. 목주녀가 사정을 하였지만 아버지와 의붓어머니는 목주녀를 매정하게 동구 밖까지 끌어내고 대문까지 걸어 잠갔다.
목주녀는 서운한 생각이 들어 훌쩍 떠나고 싶었으나 차마 부모를 버리고 갈 수가 없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틈에 집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제 할 일을 하였다. 그러자 아버지와 의붓어머니는 모진 매를 때려 목주녀를 다시 내쫓았다. 목주녀는 더 이상은 아버지가 받아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어 놓았다. 정처 없이 눈물을 지으며 걷던 목주녀는 얼마 가지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정신을 차린 목주녀는 자신이 낯선 집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 오솔길에서 쓰러져 있던 목주녀를 길을 지나던 노파가 데려온 것이었다. 노파는 따뜻한 미음을 끓여 와 입에 떠 넣어 주며 정성껏 목주녀를 보살펴 주었다. 목주녀는 난생처음 받아 보는 보살핌에 노파에게서 따뜻한 모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며칠 되지 않아 기력이 회복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목주녀는 그간의 사연을 노파에서 설명하고 어머니로 모시고 살기를 원하였다. 노파는 원래 가난하여 초라한 움막에 살았지만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또한 목주녀를 보니 부지런해서 제 밥값도 할 것 같아 위로하며 함께 살기를 허락하였다.
목주녀는 그날부터 노파를 따라 다니며 밭도 매고 길쌈도 하였다. 또한 효성은 타고난 천품이라 노파를 어머니로 모시고 극진히 받들었다. 노파도 남편을 여읜 뒤 하나 있는 아들을 남의 집 머슴으로 보내고 외롭게 지내던 차에 알뜰한 효녀를 만났으니 큰 위로를 받았다.
얼마 뒤 노파는 목주녀를 며느리로 삼았다. 식구들이 저마다 부지런히 일하고 알뜰하게 살림하여 형편은 점점 좋아졌다. 몇 년 후에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알부자가 되었다. 노파는 아들과 며느리의 지극한 효도를 받으며 여생을 마치었다.
목주녀는 가세가 넉넉해지자 친정 부모가 걱정이 되었다. 효성이 지극한 목주녀인지라 미움보다는 늙은 부모를 못 모시는 것이 더 마음이 아팠다. 더욱이 풍문으로 들으니 친정아버지가 가산을 탕진하고 힘겹게 노후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 소문을 들은 목주녀는 밥맛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았다. 수심에 가득 찬 아내를 보고 남편이 까닭을 물었다. 목주녀는 눈물을 흘리며 친정아버지가 끼니를 굶으며 힘겹게 살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하였다.
남편이 목주녀에게 친정 부모를 모셔 와 봉양하자고 말하자 목주녀는 남편에게 무수하게 감사하면서 친정 부모를 찾아 모셔 왔다. 목주녀는 친정 부모를 위해 사철에 맞도록 의복을 지어 올리고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였다. 남편에게 미안하여 집안일도 더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목주녀의 아버지와 의붓어머니는 미안해하기는커녕 욕심이 많아 항상 불평을 할 뿐이었다. 의붓어머니는 목주녀의 넉넉한 생활에 질투가 나서 모든 일에 트집까지 잡았다.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운 나머지, 목주녀는 석양 하늘을 보며 죽은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한을 담은 노래를 지어 읊었는데, 이 노래가 세상에 「목주가」로 전한다. 「목주가」는 『고려사』 악지(樂志)에 사연과 노래 제목이 전한다.
[모티프 분석]
「목주 효녀의 목주가」는 의붓어머니가 전처소생을 학대하는 이야기이다. 목주녀는 의붓어머니에게 온갖 설움과 구박을 당하면서도 효심을 잃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의붓어머니와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끝내 그 효심을 인정받지 못하여 그 설움과 한을 「목주가」라는 노래로 풀어냈다. ‘의붓어머니의 구박’이라는 모티프는 설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데, 「콩쥐 팥쥐」, 「장화 홍련전」, 「접동새 설화」 등이 대표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