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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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龍寺- |
이칭/별칭 | 구룡사 빈대와 밀양 박씨 이야기,빈대 때문에 망한 절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영순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4년 5월 15일 - 『천안의 구비 문학』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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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6년 10월 5일 -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 |
관련 지명 | 구룡사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 |
성격 | 전설|풍수지리담 |
주요 등장 인물 | 주지승|밀양 박씨 |
모티프 유형 | 사찰이 망한 이유|빈대 절터 설화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에 전해 내려오는 구룡사 터에 대한 이야기.
[개설]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에 구룡사라는 절이 있었다. 「구룡사 빈대」는 충청북도 밀양 박씨 문중에서 구룡사 터가 명당이라는 것을 알고 묫자리를 쓰기 위해 구룡사 중들을 유인한 뒤 몰래 묘를 썼다는 이야기이다. 그 후 절에는 빈대가 들끓어 폐사가 되고 밀양 박씨는 번창하였다.
[채록/수집 상황]
「구룡사 빈대」는 1990년 6월 26일 상명 대학교 국어 국문학과 답사 당시 이순목[73세]에게 「구룡사의 빈대와 밀양 박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채록하였다. 「구룡사 빈대」는 1994년에 발간된 『천안의 구비 문학』과 1996년에 발간된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되었다.
[내용]
현재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백자리 산39-1에 구룡사가 있으나 「구룡사 빈대」에 나오는 구룡사는 고개 너머 위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구룡사가 자리한 산의 주인은 충청북도의 밀양 박씨 집안이었다. 밀양 박씨가 부모상을 당해 명당을 찾아보니 구룡사 절터가 용이 구부리고 올라가는 상이었다. 그러나 구룡사 중들이 100여 명이나 되어 묘를 쓸 수가 없었다.
밀양 박씨는 꾀를 써서 광대들을 불러들여 구룡사의 중들을 유인하였다. 그리고 구룡사의 중들이 모두 구경하러 가서 절이 텅 빈 사이 구룡사에다 몰래 하관을 하였다. 밀양 박씨가 몰래 묫자리를 쓰고 난 뒤에 구룡사에는 빈대들이 들끓어서 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절의 모든 보물을 파묻고 돌로 입구를 막아 버린 후에 폐사하였다. 그러나 밀양 박씨는 명당에 묘를 쓰고 더욱 잘되었다. 화가 난 구룡사의 주지승이 혼자만 망할 수 없다고 쇠도리깨로 금붕어 형상의 산허리를 끊어 내니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구룡사 빈대」의 주요 모티프는 ‘사찰이 망한 이유’ 혹은 ‘빈대 절터 설화’이다. 이는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모티프이며, 『한국 구비 문학 대계』에는 총 19편이 실렸다. 조선 시대 배불(排佛) 정책으로 폐사하는 절이 많아 관련 설화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빈대’는 ‘유생들의 행패’나 ‘양반들의 횡포’를 의미한다. 『한국 구비 문학 대계』의 유형 분류에 의하면 543-1의 ‘지형에서 유래한 지명 전설’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