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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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改嫁-烈女 |
이칭/별칭 | 개가해서 집안을 일으킨 열녀 이야기,개가 열녀,두 남편 섬긴 열녀,두 번 시집간 열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
집필자 | 강영순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1년 7월 27일 -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김행도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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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4년 5월 15일 - 『천안의 구비 문학』에 수록 |
채록지 | 안서동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
성격 | 설화|민담|열녀담 |
주요 등장 인물 | 열녀|남편|시부모|여관집 내외 |
모티프 유형 | 개가해서 본남편 집안을 잘살게 한 열녀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에서 전해 오는 개가한 열녀 이야기.
[개설]
「개가한 열녀」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이 개가하여 부자가 된 뒤 본남편의 집안을 다시 살린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개가한 열녀」는 상명 대학교 구비 문학 연구회에서 1991년 7월 27일 김행도[69세, 여,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에게 채록하여 1994년 천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천안의 구비 문학』과 1996년 발간한 『구비 문학 대관』에 수록하였다.
[내용]
옛날 어느 집에 노부모와 외아들이 살았다. 노부모가 외아들을 장가보냈는데 첫날밤을 치른 후 아들이 가출을 해서 돌아오지를 않았다. 3년이 지나도록 남편은 감감무소식이었지만 며느리는 지성으로 시부모를 모셨다. 시부모는 홀로 지내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친정으로 가라고 하였지만 며느리는 돌아가지 않았다. 보다 못해 시부모는 며느리를 잠깐 친정에 보내고 그사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며느리가 돌아와 보니 시부모 행방이 묘연하였다. 친정 부모가 친정으로 함께 돌아가자고 하여도 며느리는 따라가지 않고 시부모를 찾아 몇 년을 헤맸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여관집 일을 거들어 주게 되었는데 주인 내외가 며느리의 성실함을 보고 몹시 흡족해하였다. 자식 없는 주인 아내는 며느리에게 아들을 낳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며느리가 시부모와 남편을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말하자 주인 내외는 아이를 낳아 주고 몇 년만 키워 주고 떠나라고 하였다. 마을 유지들이 모두 증인이 되어 도장을 찍었다.
며느리는 그 집에서 살며 아들 둘을 낳았다. 아들 둘을 낳고 떠나려 하니 마을 유지들이 빈손으로 보내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주인 내외는 며느리가 들어온 이후에 불어난 재산을 계산하여 모두 며느리에게 주었다. 며느리는 그 돈을 가지고 어느 마을에 가서 여관을 차렸다. 마음씨 착한 며느리는 배고프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을 먹여 주고 입혀 주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유심히 보니 시부모와 남편이 상거지가 되어 여관에 들어섰다. 헤어진 가족과 해후한 며느리는 재산을 모두 팔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며느리가 땅과 집을 사들여 부자로 살고 있는데 여관 주인에게 낳아 준 아들 둘이 찾아왔다. 본남편은 기쁘게 맞으며 두 번째 남편과도 결연 형제를 맺어 왕래하기로 하였다. 자식 없는 집에 자식을 낳아 주고, 떠나간 남편을 되찾은 며느리를 사람들은 ‘열녀’라고 불렀다. 그래서 ‘개가 열녀’이다.
[모티프 분석]
「개가한 열녀」의 모티프는 ‘개가 열녀’로,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개가하는 이유는 남편의 사망, 병, 가난 등 여러 가지이지만, 아내가 개가하여 본남편을 살리거나 그 가문을 일으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변이형으로 개가하여 병든 남편을 치료하여 주었으나 남편이 끝내 죽자 아내가 따라서 죽은 이야기도 있다. ‘개가 열녀’ 모티프는 조선 후기 야담에서도 보인다. 개가 이유는 남편이 국경을 지키는 병사가 되어 변방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유사한 모티프로 ‘열불열(烈不烈) 설화’의 유형도 있으나, 이는 비극적 결말을 지녔다는 점과 열녀인지 불열녀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등 향유층의 인식이 다르다. ‘개가 열녀’는 주인공을 열녀로서 긍정적으로 인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