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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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角小作組合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에 있었던 농민 단체.
[개설]
청도 지역에서 1920년대 전반기 농민 운동을 주도한 농민 단체는 1921년 1월에 조직된 삼군 소작인 동맹회(三郡 小作人 同盟會)와 1922년 봄에 조직된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 그리고 1924년 3월에 조직된 풍각 소작 조합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농민 단체들은 1920년대 전반기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 후반기 청도 지역 농민 운동이 약화되는 중에, 1926년 1월에 조선 농민사 청도 지부가 설치되었고, 1926년 10월에는 청도 소작 조합이 조직되었다.
[변천]
풍각 소작 조합은 1924년 3월경 소작인의 권익 보호와 소작 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1922년 봄에 결성된 풍각면 농사 개량 조합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1924년 3월 23일에 소작 연설회를 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풍각 소작 조합은 소작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24년 3월 23일에 소작 연설회를 개최하였는데, 조선 노농 총동맹의 정운해(鄭雲海)와 김정규(金正圭), 그리고 김하정(金夏鼎)을 연사로 초빙하였다. 이들은 모두 대구 조선 노동 공제회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었다.
대구 출신의 정운해는 1923년 2월 대구 노동 공제회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어 경상북도 달성군 소작 조합 결성을 주도하였으며, 1924년 조선 노농 총동맹 중앙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경상남도 합천시 출신의 김정규(金正奎)는 1924년 1월 대구 노동 공제회 제5차 정기총회에서 집행 위원으로 선출된 인물이었다. 대구 출신의 김하정은 1898년 대구 협성 학교(協成 學校)에서 수학하였으며, 1922년 4월에 조선 노동 공제회 제3차 정기 총회에서 간사로 선출되었고, 사상 단체 상미회(尙微會)에서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1920년대 초반 풍각 지역의 농민 운동은 대구의 조선 노동 공제회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1920년대 전반기 청도 지역의 농민 운동을 주도했던 삼군 소작인 동맹회와 풍각 농사 개량 조합을 계승한 풍각 소작 조합은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