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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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城徐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래업 |
본관 | 달성 서씨 본관 - 대구광역시 달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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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달성 서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
세거|집성지 | 달성 서씨 집성지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
성씨 시조 | 서진 |
입향 시조 | 서대건 |
[정의]
서진(徐晉)을 시조로 하고 서대건(徐大建)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달성 서씨(達城徐氏) 시조 서진은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판도 판서(判圖判書) 등을 역임하였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달성[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아 세거(世居)하게 되었다. 시조 서진의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穎)까지 삼대가 달성군에 봉해졌다고 하며, 이에 후손들이 달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달성 서씨는 현감공파(縣監公派)·학유공파(學諭公派)·판서공파(判書公派)·감찰공파(監察公派)·진사공파(進士公派)·생원공파(生員公派)·참판공파(參判公派)·종사랑공파(從仕郞公派) 등 9파로 나뉘어졌다.
[입향 경위]
18세기 중엽 대구 원대에 살던 서대건은 가문에 우환이 많고 부모가 돌아가시자, 산수(山水)가 수려하고 토지가 비옥한 곳을 찾다가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에 입향하였다. 이후 ‘신당 절목 십 개조(新塘節目十個條)’를 정하고 대구 감영의 허가를 얻어 마을 교화에 힘썼다고 한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349가구 95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달성 서씨 집성촌인 각남면 신당리는 2000년대까지 50여 가구가 살던 종족 마을이었지만, 2012년 현재는 약 2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