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912 |
---|---|
한자 | 鐵城李氏 |
이칭/별칭 | 고성 이씨(固城李氏) |
분야 | 성씨·인물/ 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래업 |
본관 | 철성 이씨 본관 - 경상남도 고성군 |
---|---|
입향지 | 철성 이씨 입향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
세거|집성지 | 철성 이씨 집성지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매전면 하평리|금천면 김전리·방지리·동곡리 |
묘소|세장지 | 철성 이씨 입향조 이육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
성씨 시조 | 이황 |
입향 시조 | 이육 |
[정의]
이황(李璜)을 시조로 하고 이육(李育)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연원]
철성 이씨(鐵城李氏) 시조 이황(李璜)은 중국 한나라 무제 때 군사를 이끌고 우리나라에 왔다가 눌러앉은 이반(李槃)의 24세손이다. 고려 덕종 초에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부사를 지내고 1033년 거란의 침입을 막아 철령군(鐵嶺君)[철령은 철성(鐵城)의 옛 이름으로, 현 경상남도 고성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이황을 시조로 하고 철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었다.
[입향 경위]
무오사화 를 피해 청도에 은신한 이육(李育)이 최자순의 딸 흥해 최씨(興海崔氏)와 혼인하여 유등리에 정착하였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702가구 1,831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주요 집성촌은 화양읍 유등리, 매전면 하평리, 금천면 김전리·방지리·동곡리 등이다.
[관련 유적]
화양읍 유등리에 위치한 유호연지 앞쪽에 이육을 모신 재실 추원재와 원산재가 있다. 추원재는 1818년 죽촌 마을에 건립되었지만, 1989년 유호연지 앞쪽으로 이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