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0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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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文善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개항기 청도 출신의 의병.
[개설]
박문선은 조선 말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산남 의진에 참여하여 중군장 박용운(朴龍雲)과 함께 청도를 비롯하여 영천·창녕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활동 사항]
박문선(朴文善)[?∼?]은 1906년 3월 산남 의진에 참여하여 중군장 박용운과 함께 청도·영천·창녕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산남 의진은 1906년 3월부터 1908년 7월까지 경상북도 영천을 비롯하여 영덕·청송군 일대에서 정용기(鄭鏞基)·정환직(鄭煥直)·최세윤(崔世允) 의병장이 이끌던 의병진이다. 창의장 정용기(鄭鏞基)가 1907년 10월 입암(立巖) 전투에서 전사한 뒤, 동년 12월 제2대 대장 정환직(鄭煥直)마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그리하여 최세윤이 1908년 2월 5일 이세기(李世紀)·정순기(鄭純基) 등에 의해 산남 의진의 제3대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최세윤은 1908년 1월부터 영천을 비롯하여 청송·영덕·영양·영해·경주·청도·의성 등지에서 각 지대별 유격전을 구사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는데, 경산과 청도 지역에는 지역 분대가 설치되었고, 운문산(雲門山)이 그 본거지였다.
박문선은 청도 출신이라는 『산남 창의지(山南倡義誌)』의 기록 외에는 다른 구체적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