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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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坤道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7월 5일 - 허곤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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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7일 - 허곤도 청도읍 일본인 구타 의거 |
1919년 7월 10일 - 허곤도 대구 지방 법원에서 태형 90도 언도 받음 | |
몰년 시기/일시 | 1951년 11월 1일 - 허곤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허곤도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허곤도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
활동지 | 허곤도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청도읍 일본인 구타 의거 |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허곤도는 1884년(고종 21)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출생하여 1951년 사망하였다. 1919년 5월 7일 청도읍 일본인 구타 의거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5월 7일 대성면[현 청도읍] 유호리 김달선(金達先)의 집에 머물던 일본인 세 사람 충전작태(充田作太)·산구호웅(山口虎雄)·수야희삼랑(水野喜三郞)은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독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이종현(李鍾鉉)이라는 아이의 입술을 베어 버렸다. 이에 격분한 이종현의 형 이종학(李鍾學)은 이규봉(李圭鳳)·허곤도(許坤道)[1884∼1951]·김영곤(金永坤)·김도곤(金道坤)·이무수(李武壽) 등 마을 청년 20여 명과 함께 일본인 3명을 구타하여 1개월 내지 12일의 치료를 요하는 창상을 입혔다. 일제는 이 의거를 3·1 만세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최후의 폭동’으로 규정하였다.
일본인 구타 의거로 체포된 이종학 외 4인은 소요 상해 건조물 손괴로 기소되어 대구 지방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허곤도는 1919년 7월 10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태형(笞刑) 90도를 받았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