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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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炳馹 |
이칭/별칭 | 윤병형(尹炳亨)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 윤병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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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4년 1월 - 윤병일 다물단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6월 - 윤병일 검찰에 넘겨짐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3월 31일 - 윤병일 무죄 판결을 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74년 - 윤병일 사망 |
출생지 | 윤병일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735번지 |
활동지 | 윤병일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다물단 가입|군자금 제공 |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윤병일은 1898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孔巖里) 735번지에서 출생하여 1974년 사망하였다. 1924년 1월 중국 북경에서 조직된 다물단(多勿團)에 가입하고,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가계]
본관은 파평(坡坪). 아버지는 윤상렴(尹相濂)이다.
[활동 사항]
윤병일(尹炳馹)[1898∼1974]의 아버지 윤상렴(尹相濂)은 향리에서 한문을 공부하고 한학 지도에 심혈을 기울였다. 윤병일은 1924년 1월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거연정에서 서동일(徐東日)을 만나 다물단에 가입하였다. 다물단은 중국 북경에서 국민당 당원 남형우와 배천택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1925년 1월 다물 단원 서동일은 특파원 신임장과 함께 많은 군자금을 제공한 사람에게 줄 다액 출자금 표창 휘장 2장을 지니고 국내로 들어왔다. 윤병일은 거연정에서 서동일을 만나 군자금 모집 계획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1925년 6월 서동일은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며 이때 윤병일을 비롯하여 남형우(南亨佑)·최성희(崔聖熙)·이종호(李鍾昊) 등도 함께 붙잡혔다. 윤병일은 1925년 6월 검찰에 넘겨져, 1925년 12월 28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예심을 거쳐, 1926년 3월 31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서예 등 문예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