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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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鄕土誌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태호 |
[정의]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등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
[개설]
전통 사회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앙 집권적인 정치가 있었지만, 각 군현 중심으로 향약과 향안 등을 실시하면서 강한 결합을 바탕으로 지방 단위의 공동체 삶을 유지해왔다. 그 결과 각 지방은 개별성과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각 지방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지리와 역사적인 사실을 기술하고 그 지역 출신의 인물을 소개하는 향토사의 발달과 향토지 편찬이 각 군현과 민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났다. 특히 조선 후기에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향토지 편찬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도 지역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면서 지역마다 향토사 연구와 시·군지(市·郡誌), 읍·면지(邑·面誌) 등의 각종 향토지가 지방 자치 단체나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많이 편찬되었다.
청도군의 경우 일찍이 영남 사림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유교 문화의 요충지로서 조선 초기부터 관청을 비롯한 사찰, 서원 등에서 서적 간행 활동이 이루어졌다.
[관찬 향토지]
조선 초기의 관찬 지지인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따르면 청도는 호구 수는 649호며, 인구는 3,361명으로,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지역이 반반에 달하고, 기후는 따뜻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청도 지역과 관련하여 편찬된 향토지를 수록 내용과 시대별 변천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469년 『경상도 속찬 지리지』가 편찬되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이 1530년경 편찬되었다. 이 외에 『여지도서』[1760], 『동국문헌비고』[1782], 『대동지지』[1863], 『성현도 역지(省峴道驛誌)』[1871] 등이 각각 편찬되었다. 이들 서적은 모두 청도군에 대해 일부 내용을 담고 있다. 청도군만의 읍지로 간행된 것은 1895년 『청도군 읍지』가 있다. 이후 1896년 『청도 군지』가 간행되고, 전국의 읍지 상송령에 따라 1899년에 『청도군 읍지』가 간행되었다.
관찬 향토지는 1800년대 후반까지 이어지다가 1950년까지 대부분 개인이 편찬하는 사찬 향토지가 주를 이룬다. 이후 1990년대 넘어서 다시 군청 주도의 향토지가 편찬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1982년 청도군에서 발행한 『내 고장 전통문화』, 1991년 간행한 『청도 군지』, 청도 문화원에서 1996년 간행한 『마을 지명 유래지』 등이 있다.
[사찬 향토지]
1673년 『오산지(鰲山志)』는 이중경(李重慶)이 편찬한 것으로 청도 지역의 산악 형세를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청도 지역은 산천이 견고하게 감싸고 있고, 지금의 용각산인 갑봉(甲峯)과 서쪽의 비슬산 그리고 동쪽의 둔덕산이 올연히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는 화악산이 가로지르니 이것이 고을의 주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산지 이후 1900년 초반까지 관찬 위주로 편찬되었으며, 1906년 『교남지(嶠南誌』에 청도군에 대한 내용이 편찬되었다. 이후 1922년에서 1937년까지 편찬된 『조선 환려 승람(朝鮮寰輿勝覽)』에 수록되었으며, 1940년경 『청도 문헌고』가 편찬되었으며, 필사본인 『청도군 읍지』가 연대 미상으로 편찬되었다. 1950년대 이후에는 당시의 청도 유학자인 김재화(金在華)에 의하여 『오산지』를 정정한 『정정 오산지(訂正鰲山志)』가 1952년 편찬되었으며, 『오산지』 이후의 사실을 기록한 『오산지 속편』이 편찬되었다. 1958년에는 전석봉에 의해 『도주지』가 편찬되었다.
[의의와 평가]
청도군은 일찍이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하천이 관통하는 자연 지리적인 환경과 운문사 등 명찰 등이 조성되어 일찍이 학문적·종교적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이와 같은 자연환경과 지리적·문화적 특징으로 일찍이 다른 지역과 구분되어 청도 지역에서는 향토지가 관청뿐만 아니라 개인에 의해서도 편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