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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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工銀行 |
영어공식명칭 | Agricuture and Industry Bank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수종 |
[정의]
농업 및 공업의 개량과 발전을 지원하고 일반금융과의 조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은행.
[설립경위]
1906년 대한제국의 재정과 금융의 전권을 장악한 일본인 재정고문 메가다(目賀田種太郞)의 주도하에 설립되었다. 명목적으로는 대한제국 농공업의 개량 발달에 목적이 있었으나 일본상품의 반입과 식량 및 원료의 반출을 금융적인 측면에서 지원하기 위한 것이 실질적인 목적이었다.
[변천]
1906년 6월 한성농공은행을 시작으로 1907년 함흥농공은행에 이르기까지 11개의 농공은행(한성, 충주, 대구, 평양, 전주, 진주, 해주, 경성, 함흥 등)을 설립하였다. 다시 1097년 6월과 1908년 8월 두 차례의 합병과정을 거쳐 6개 농공은행(漢湖, 慶尙, 平安, 全州, 光州, 咸鏡)체제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농공은행은 1906년부터 전국 주요지에 본점과 지점을 설치하기 시작하여 1918년 10월 조선식산은행에 합병되기까지 본점 6개를 비롯 지점 및 출장소 41개 등 총 47개를 설치하였다. 주로 영업점포는 도청소재지, 철도역 및 항구 소재지 등의 지역에 설치하였는데 당시에도 도청소재지였던 청주에는 한호농공은행의 출장소가 1907년 9월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한호농공은행 청주출장소는 1918년 10월 조선식산은행령의 공표로 여섯 개의 농공은행이 해산되고 이들이 새로 설립한 조선식산은행에 합병됨에 따라 명칭이 조선식산은행 청주지점으로 개칭되었다.
[기록상황]
청주에 최초로 근대적 금융기관이 설립된 것은 1907년 9월 한호농공은행 청주출장소로 충북에서는 1906년 9월 충주출장소에 이어 두 번째이다.
농공은행의 하나인 한호농공은행 청주출장소의 1909년 입금고는 6천1백82만 5천4백37엔이며 상금고는 5천1백20만97엔으로서 충주출장소 입금고 7억1천7백2만5천949엔의 9%수준이었으며 상금고는 충주출장소의 7%수준에 불과하였다.
출처 : 충청북도 관찰도, 한국충청북도 일반 1909, 210쪽
1909년 한호농공은행 청주출장소의 총 예금고는 1천49만3백70엔으로 이 중 당좌예금이 7백73만2백40엔으로 전체의 73.7%을 차지했다. 당시 청주출장소에서 취급했던 대부금의 종류에는 연부 대부금, 정기 대부금, 보통 대부금 세 종류가 있었으나 주로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한 보통 대부금이 1천7백8십4만엔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한호농공은행 청주출장소의 예금이율을 살펴보면 정기예금의 경우는 연리 최저 6분, 최고 8분이었고 당좌예금의 경우 최저 1전 2리였다. 대부금의 경우는 최저 5전, 최고 7전이었다.
출처 : 충청북도 관찰도, 한국충청북도 일반 1909, 213쪽
1918년 한호농공은행이 조선식산은행으로 개칭하였고 1920년에는 조선실업은행이 설립되었으나 이때까지도 지방은행은 설립되지 않았으며 1927년 말 청주소재 은행은 조선식산은행 청주지점과 조선상업은행 청주지점이 있었다.
출처 : 청주시지(하), 1997, 330쪽.
1927년 근대적 금융기관으로서 조선식산은행 청주지점은 청주지역 총예금 1,159,575엔의 61%인 711,642엔의 예금을 수취하였으며 총대부금 3,915,817엔의 74%인 2,906,269엔의 대부를 하였다.
조선상업은행 청주지점은 조선실업은행 청주지점으로 1920년에 설립되어 1923년 11월에 조선실업은행 조치원지점이 폐쇄된 결과 그 업무일체를 승계하였으며 1924년 8월 조선실업은행은 조선상업은행으로 합병되고 그 후 조선상업은행 청주지점으로 개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