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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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誠謹 |
영어음역 | Jeong Seonggeun |
이칭/별칭 | 이신(而信),겸부(兼夫),충절(忠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미숙 |
[정의]
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이신(而信)·겸부(兼夫). 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정척(鄭陟)이고, 슬하에 정주신(鄭舟臣)·정매신(鄭梅臣)을 두었다.
[활동사항]
정성근(鄭誠謹)은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수학하고, 1474년(성종 5)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관직에 올랐다.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479년 홍문관수찬겸검토관, 1481년 홍문관부교리겸시독관으로 경연을 주재했고, 경차관으로 경기도에 파견되어 유민(流民)을 진휼하였다.
1482년 홍문관부응교을 지내고, 1483년 다시 경차관으로 황해도로 파견되어 활약하였다. 홍문관전한겸시강관을 거쳐 1487년 대마도선위사로 대마도주가 준 선물을 거절하는 청렴함을 보여주었고, 홍문관직제학을 거쳐 1488년 해주목사로 부임했다. 또한 충주목사로 부임해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1490년(성종 21) 반우형(潘佑亨)·표연말(表沿沫) 등과 함께 사유(師儒)로 선발되어 사람들에게 유교의 도리를 가르쳤다.
이후 경기도경차관, 승정원우부승지를 거쳐 승정원좌부승지로 있을 때 해주목사로 재직할 때의 부정 사실로 탄핵을 받았다. 후에 다시 기용되어 청백리에 피선되고 1494년 성종이 죽자 3년간 수묘관을 지냈다. 1504년(연산군 10년) 행호군으로 있다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참수되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고, 1507년(중종 2)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고향 진주에 충효의 정려가 건립되었다. 경기도 광주 구암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