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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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愛戀頌 |
영어공식명칭 | Pity a Eulogy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744-20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채광수 |
[정의]
일제 강점기에 달성 사문진 나루터에서 일부 촬영한 흑백 통속 영화.
[공연 상황]
「애련송」은 1936년 제1회 『동아 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작이며 『동아 일보』에 1937년 10월 5일부터 12월 14일까지 5회 연재된 최금동의 작품을 김유영이 연출하였다. 극예술 연구회는 『동아 일보』의 후원을 받아 김유영과 양세웅을 초빙해 연출과 촬영을 맡겨 1937년 10월 23일 영화 촬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촬영 도중 일제의 탄압으로 극예술 연구회가 해체되고 극단 극연좌로 개편되는 어려움 속에서 1939년 6월 영화가 완성되어 1939년 6월 27일 명치좌에서 개봉되었다.
문예봉, 김치근, 이웅, 김일영, 이백수, 송관섭, 신태선, 윤방일, 안복록, 강정애, 김복진, 김신재, 윤기연, 곽장액, 서항석, 유치진, 기타 엑스트라 600여 명이 출연하였다. 제작 책임은 서항석, 각색은 이효석, 대사는 유치진, 촬영은 양세웅, 음악은 홍난파, 미술은 강성범, 자막은 최일송, 조명은 이상남, 동시 녹음은 조선 영화 주식회사, 의상은 백상회(白商會)가 각각 담당하였다.
[내용]
여주인공은 같은 마을에 사는 음악도인 청년을 사랑한다. 그러나 청년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그녀는 부모의 명령으로 정략결혼을 하기로 결정한다. 청년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 그녀의 결혼식이다. 청년은 결혼식장으로 달려가나 소용이 없다.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 친구들의 설득으로 귀국 음악회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발표회 뒷좌석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인이 있는데 그가 사랑하던 바로 그 여인이다.
[의의와 평가]
「애련송」은 구미 출신 김유영의 첫 상업 영화로 영화와 문학의 유기적 결합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지향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김유영은 이 작품을 조선 영화의 수준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였다고 자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