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463 |
---|---|
한자 | 和此隱庄夜話 |
영어공식명칭 | Reply To Chaeunjang's Night Story |
이칭/별칭 | 「차은장의 밤 이야기에 화답함」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870년 - 「화차은장야화」 저자 이일우 출생 |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 「화차은장야화」 저자 이일우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49년 - 『성남세고』에 「화차은장야화」 수록하여 간행 |
배경 지역 | 아미산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
배경 지역 | 우현서루 -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 |
성격 | 한시|칠언율시 |
작가 | 이일우 |
[정의]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에 우현서루를 설립하여 교육과 구휼에 힘썼던 이일우가 차은장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화답한 한시.
[개설]
「화차은장야화(和此隱庄夜話)」의 저자 이일우(李一雨)[1870~1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소남(小南)이다. 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1836~1905]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학래(李學來)의 딸이다. 1904년 서울을 유람하고 세상의 정세를 통찰하고는 옛 전통에만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느꼈으며, 돌아와서 영재를 교육할 계획을 세우고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에 우현서루(友弦書樓)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한일합병조약 이후 달성친목회(達城親睦會) 사건에 연루되어 1911년에 우현서루가 철폐되어 강의원(講義院)으로 운영되었다. 이일우는 1920년 경북 칠곡군 약목면 동안동 일대의 수재를 구휼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성남세고(城南世稿)』가 있다.
「화차은장야화」는 2016년 경진출판에서 발행한 『국역 성남세고(國譯城南世稿)』에서 쉬운 우리말로 제목을 풀이하여 「차은장의 밤 이야기에 화답함」이라고 표기하였다. 차은장은 아미산(阿彌山) 아래[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일대 언덕]에 있었다.
[구성]
「화차은장야화」는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내용]
세사빈분과몽장(世事繽紛過夢場)[번잡한 세상일이 한바탕 꿈처럼 지나가니]
번여위우부위양(翻如爲雨復爲陽)[마치 비 내리다가 다시 해가 뜨는 듯하네]
료지물태수금고(聊知物態殊今古)[사물의 모습이 고금이 다름을 바야흐로 알며]
긍향시인설단장(肯向時人說短長)[당시 사람 향하여 장점과 단점을 말하려 하네]
만호연진미수색(萬戶煙塵迷峀色)[수많은 집의 연기는 산색과 어우러지며]
일루풍월저서향(一樓風月儲書香)[누각의 바람과 달은 책에 향기를 더하네]
음동백발수다일(吟同白髮雖多日)[백발로 함께 읊을 날이 비록 많겠지마는]
차한년광거자망(且恨年光去自忙)[유감스럽게도 세월이 절로 빠르게 흘러가네]
[특징]
「화차은장야화」는 ‘양(陽)’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칠언율시이다.
[의의와 평가]
이일우는 「화차은장야화」에서 백발이 되도록 살아온 세상이라 현실 문제에 대하여서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으나, 유수처럼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음을 노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