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0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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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風水地理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집필자 | 손승호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개설]
풍수지리의 풍수는 장풍 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로 인간에게 해로운 것을 피하고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물을 구하기 위해 일찍부터 사용해온 터 잡기 방법이다. 풍수지리는 음양론과 오행론을 바탕으로 주역의 체계를 주요한 논리 구조로 삼는 전통적인 지리 과학으로 추길 피흉(趨吉避凶)을 목적으로 삼는다. 풍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취락이나 주거지, 도읍지를 선정하는 양기 풍수, 죽은 자를 위한 묘 자리를 선정하는 음택 풍수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상고 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터 잡기 방법인 풍수지리는 특히 양택(陽宅)과 음택(陰宅)의 선택 및 도읍의 선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양기와 음기가 융화하여 생기가 충만한 곳을 명당(明堂)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는 풍수지리에서 요구하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명당이 별로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돌을 쌓아 언덕을 만들기도 하고, 숲을 조성하기도 한다. 이처럼 부족한 부분을 도와 모자람을 채움으로써 지기를 보완하는 방법을 비보압승론(裨補壓勝論)이라고 한다.
[풍수적 입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시가지는 풍수지리에서 강조하는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뒤로는 도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시가지의 앞쪽으로는 중랑천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형태가 풍수지리에서 강조하는 방법이나 형국 등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도봉산은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과 연접해 있는 산으로 지기가 풍부하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원통사, 천축사 등이 도봉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원통사
원통사(圓通寺)는 863년(경문왕 3)에 도선 국사가 창건했으며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도봉산의 우이암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은 두꺼비·학·거북 등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장관이다. 도선 국사는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하늘과 땅의 기가 서로 통하는 장소로 인식하였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의 도선사를 건립한 이듬해에 도봉구에 원통사를 건립한 것은 도봉산과 삼각산을 풍수적 관점에서 대표적인 길지로 간주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 천축사
천축사는 도봉산의 선인봉 남쪽에 있으며, 673년(문무왕 13) 의상(義湘)이 세운 옥천암이라는 암자에서 시작되었다. 사찰 주변의 지형은 깎아지른 듯한 만장봉을 배경으로 울창한 수림이 형성되어 있어 마치 닭이 계란을 품고 있는 형국을 하고 있다.
3. 도봉구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있는 자리는 도봉산과 북한산이 마주치는 지점이다. 거대한 두 산의 기운이 서로 마주치며 소용돌이가 곁들여져 편안한 양기가 될 수 있는 곳은 아니고 기존의 마을 정도를 부양할 수 있는 지기의 땅이다. 은행나무의 바로 옆에는 연산군 묘가 있는데, 도봉산 줄기가 뒤쪽의 조그마한 개천에 의해 끊어진 자리로 맥이 잘리는 것은 물론 풍수비수(風水悲愁)의 자리라서 바람이 몹시 불거나 비가 내릴 경우 쓸 만한 땅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유로 폭군의 묘로 허락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4. 초안산 내시 집단 묘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쳐 있는 초안산에 조성되었던 내시 집단 묘역이다. 초안산의 서쪽은 우이천, 동쪽은 중랑천이 흘러 예로부터 풍수지리설에 따라 음택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내시 집단 묘역의 묘는 일반적으로 남쪽을 향하는 다른 묘들과 달리 궁궐이 자리하고 있는 서쪽을 향해 있다.
5. 무수울
도봉동의 무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있는 자연 마을이다. 이 마을 안쪽의 무수골에는 세종대왕의 아홉째 아들인 영해군의 묘소가 있는데, 이 묘소의 형국이 ‘신선이 소매를 펼치고 춤을 추는 모습[선인무수지형(仙人舞袖之形)]’이라 한다. 한편 이 곳의 산줄기는 풍수지리상 용의 허리에 해당하여 개울가가 아닌 곳에서는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로부터 이 마을의 이름인 무수울이 유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