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557
한자 尹趾善
이칭/별칭 중린(仲麟),두포(杜浦)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27년연표보기 - 윤지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62년 - 윤지선 증광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74년 - 윤지선 이조좌랑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81년 - 윤지선 대사간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83년 - 윤지선 도승지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84년 - 윤지선 광주유수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96년 - 윤지선 좌의정 제수
몰년 시기/일시 1704년연표보기 - 윤지선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파평(坡平)
대표 관직 이조 좌랑|대사간|도승지|광주 유수|좌의정

[정의]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광주일대를 관할하는 광주 유수를 지낸 문신.

[가계]

윤지선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중린(仲麟), 호는 두포(杜浦)이다. 이조판서 윤강(尹絳)의 아들이며, 우의정 윤지완(尹趾完)의 형이다. 1627년(인조 5)에 출생하여 1704년(숙종 30)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윤지선은 1662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한 후 설서(說書)·정언(正言)·지평(持平)·헌납(獻納) 등 언관직을 두루 지냈고 1674년 이조좌랑, 1681년 대사간, 1683년 도승지, 1696년 좌의정 등 주로 내직을 역임하였다. 주요 관직으로는 도승지(都承旨), 대사헌(大司憲), 이조·병조·공조판서, 좌참찬(左參贊), 우의정(右議政), 좌의정(左議政) 등을 거쳐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에 올랐다. 외직으로는 공충도(公忠道: 지금의 충청도)와 함경도의 관찰사로 나갔다가 1684년에는 광주유수(廣州留守)로 임명되어 서울특별시 강남구를 포함한 수도 한성의 외곽 경비를 담당하였다. 말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었고, 성품이 유순하여 숙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장희빈(張禧嬪)의 소생을 원자로 책봉할 때는 완곡하게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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