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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초정(芳草亭) 과 옹취정(擁翠亭) , 1737년 현감 이병건 이 세운 삼소정(三笑亭) , 1774년 현감 이병건 이 세운 사명정(四明亭) , 1774년 개령향교 앞에 세운 사반루(思泮樓) , 도동서원 앞의 임해루(臨海樓) , 섬계서원 앞에 세운 상설루(常雪樓) , 1638년 김종해(金鐘海) 가 세운 만취정(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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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했던 것이다. “아이고, 나 죽네. 살려 주이소” 길동의 비명 소리가 동부리 하늘을 진동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내신정 에서 개령 관아와 개령향교 에 미리 연통을 넣어 두었던 것이다. 넋이 반쯤 나간 길동이 멍석에서 기어 나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자, “이놈, 우리 동부리 를 욕보이지 말고 당장 마을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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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로 청 나라를 다녀왔으며, 다음해에 좌의정에 올랐다가 1872년 중추부판사(中樞府判事)로 퇴임하기까지 청백리(淸白吏)로서 명망을 얻었다. 한때, 관학산 에 있던 개령향교 터 를 탐낸 유 정승이 자신의 묘소를 들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향교를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기도 했지만, 1989년 개령향교 대성전 을 중수할 때 발견된 『개령향교신축중수이건기문』 에 1866년(고종 3) 향교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유 정승이 졸(卒)한 연도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