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이씨
-
이자성을 시조로 하고 이부·이명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광주이씨는 신라에서 내사령(內史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을 시조로 한다. 광주이씨 고창군 입향조인 이부(李斧)는 고려 말의 명신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7대손으로 1508년(중종 3)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에서 태어났다.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아버지 우천(牛泉) 이약수(李若水)가 정암 조광조(趙...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산리는 남산 밑이라서 남산리라 하였다. 임진왜란 전 서당골에 당씨, 변적골에 해주오씨, 지사골에 경주이씨가 살았고, 그 뒤 광주이씨를 비롯하여 진주정씨·상산김씨·창녕조씨 등 여러 성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조선 말기에는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남산·용장(龍庄)·흥룡(興龍...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목동리는 옛날에 마을에 참나무 정자가 있어서, 진목정(眞木亭)·목정·목동이라 하였다. 원래 우농와라 하다가 마을 지형이 움푹한 삼태기 같다고 하여 와농(窩籠)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1900년대 초에는 와룡(臥龍)으로 불리었다. 조선 말기 고창군 대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하당(下堂)·와룡·...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반리는 지형이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형국이라하여 ‘사반(巳盤)’이라고 한다. 조선 전기 청주한씨(淸州韓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五里洞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미동리(米洞里)·사반리·어룡리(魚龍里)·광승리(光升里)의 일부가 편입되어 사반리가...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금리는 마을 앞에 있는 개천에 쇠가 많이 난다고 하여 쇠내[金川]라고 했고, 그 위에 상금리가 있어서 ‘상금(上金)’이라고 하였다 한다. 1600년경 경주김씨(慶州金氏) 김익수(金益壽)가 마을 터를 이루고 안터골[현, 남산]이라 하였고, 1610년경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진방(趙鎭邦)은 쇠내 중간에 마을 터를 이루고 중금(中金)이라고 불렀...
-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희경(禧卿), 호는 현곡(玄谷)이다. 189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에서 태어났다. 석탄(石灘) 유운(柳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수당(睡堂) 유지성(柳志聖)이다. 아버지는 유기춘(柳基春)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병현(李秉賢)의 딸이다. 큰아들은 유호석이고, 작은아들은 유태석이다. 유영...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사반리에 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를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인산사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사우로서, 숙종 때에 예산(禮山) 대흥(大興)의 이약수(李若水) 묘 아래에 사우를 세우고 춘추향사(春秋享祀)를 하였는데,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0년에 자손이 세거하는 이곳에 규모를 갖추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약수(李若水)의 자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