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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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三道 |
영어음역 | Gim Sangd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윤정원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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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 |
성별 | 남 |
생년 | 1900년 |
몰년 | 1967년 |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삼도(金三道)[1900~1967]는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김삼도는 1919년 3월 8일 토요일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함께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서문장터에 집결한 뒤 신명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 등의 학생들 및 남산교회·남성정교회 등 교회 측 인사들과 시위대를 형성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다. 이날 시위는 교사 백남채·최상원·권의윤·최경학 등이 인솔하였고, 학생 대표 김삼도·심문태·정원조·박태현·이승욱·손석봉·최영학·김재범·이영식·이성해·박재곤 등의 주도하에 100여 명이 참여하였다.
일본 헌병과 군인들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시위 군중 157명이 구속되었고, 김삼도는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6개월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시위 이튿날인 3월 9일에도 계성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150여 명의 학생이 달성공원에 모였으나, 일본 군경에게 강제 해산되면서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3월 10일부터 계성학교, 신명여고, 대구고등보통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져 학생들은 지하에서 반일 운동을 계속해 나갔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