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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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峰里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 산431-1 일대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조선/조선 |
집필자 | 유영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1년 12월 17일~2002년 2월 25일 - 고봉리 유적 발굴 조사 (재)호남 문화재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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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고봉리 유적 -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 산 431-1 일대 |
성격 | 유적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에 자리한 청동기·삼국 시대·조선 시대 유구 유적.
[개설]
고봉리 유적에서는 조사 결과 청동기·삼국 시대·조선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조사된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삼국 시대 수혈 유구는 그 당시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위치]
고봉리 유적은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에 자리하는 유적으로 Ⅰ·Ⅱ·D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 Ⅰ지구는 고봉리 전431-1번지 일대에 자리한다. 즉, 서수~군산 간 계획 도로와 지방도 709호선이 교차되는 지점의 서쪽에는 구이 마을이 위치하는데 이 마을의 북서편 구릉에 유적이 자리한다. Ⅱ지구는 고봉리 산52-1번지 일대로 고봉리 의얏골 마을에서 몽사터 마을로 이어지는 소로의 오른쪽에 자리한 목재 공장의 뒤편 구릉에 자리한다. 마지막 D구역은 고봉리 전 32-4번지 일대로 개정면 아산리에서 성산 고봉리를 잇는 도로와 계획 도로가 교차되는 지점의 서쪽 구릉과 동쪽의 산사면 밭으로 개간된 지점이다.
[형태]
고봉리Ⅰ지구에서는 수혈 유구 8기, 옹관묘 1기, 민묘 2기가 조사되었다. 3기의 수혈 유구는 삼국 시대에 이용된 것으로 모두 평면 형태가 원형이다. 내부에서는 회청색 경질 토기편과 뚜껑편이 수습되었다. 이러한 유구는 백제 고지(故地)에서 주로 조사되었는데, 이 지역에 당시의 주거지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주거지와 같은 기능을 하였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나머지 5기의 수혈 유구는 조선 시대의 것으로 평면 형태는 역시 원형이며 내부는 수직으로 굴광 되었다. 내부에서는 자기편, 옹기편, 자기편, 말 이빨이 수습되었다.
옹관묘는 합구를 기본으로 하는 옹관묘가 아닌 토기편을 덮개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며, 묘광은 풍화 암반을 타원형으로 굴광하였다. 내부에서는 유물이 수습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민묘는 평면 형태가 모두 세장방형으로 바닥면은 모두 생토면을 정지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였다.
Ⅱ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3기, 석관묘 1기, 삼국 시대 주거지 1기, 옹관묘 6기가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구릉의 정상부에서 남으로 치우쳐 있으며 풍화 암반층을 굴광하고 만들어졌다. 평면 형태는 원형 2기, 방형 1기, 장방형 1기이다. 삼국 시대 주거지가 청동기 시대 2호 주거지를 파괴하고 축조되어 중복 관계를 이룬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에서는 민무늬 토기편과 다량의 석기가, 삼국 시대 주거지에서는 삼족 토기편, 배신편 등이 출토되었다.
석관묘는 구릉의 정상부에 자리하는 것으로 세장방형의 묘광에 판석을 이용하여 벽석을 축조하였다. 바닥은 아무런 시설 없이 풍화 암반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서벽에는 원형 구덩이를 파놓았는데 배수를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6기의 옹관은 구릉의 방향과 동일하게 동-서 방향으로 배치되었는데, 모두 가로로 눕혀져 있으며 2호를 제외하고 합구를 기본으로 한다. 그 중 3호 옹관은 장란형의 옹형 토기와 회청색 경질의 호가 합구되어 있어 특이하다.
D구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수혈 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다. 이 수혈 주거지는 말각 방형으로 바닥은 불다짐 하였다. 중앙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시설되었는데 양단에는 2개의 주거지가 있다. 내부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현황]
현재 공사가 완료되어 유적은 존재하지 않고 유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호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2003년에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고봉리 유적에서는 청동기·삼국 시대·조선 시대 유구가 조사되었다. 그 중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가 상당량 조사되었는데 이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군산의 청동기 시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삼국 시대 수혈은 앞으로 수혈 유구의 기능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