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과 지산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300
한자 崔致遠-芝山齋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8년 - 「최치원과 지산재」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거주하는 최수걸의 이야기를 채록
관련 지명 지산재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지도보기
채록지 지산마을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인물전설
주요 등장 인물 최치원
모티프 유형 최치원이 중국에서 과거에 급제한 이야기와 지산재최치원 제사 유래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지산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최치원에 관한 이야기.

[개설]

최치원이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서 중국에 가서 과거에 급제한 것과 중국과 광주광역시 남구 지산재에서 제사를 지내는 내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2018년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지산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최수걸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주관하는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에 수록되었다.

[내용]

최치원(崔致遠)[857~?]은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시조(始祖)이다. 최치원은 육두품으로 통일신라에서 관료로 출세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최치원은 868년(경문왕 8) 12세의 나이로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아버지 견일은 최치원에게 “10년 동안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한 지 7년 만인 874년에 18세의 나이로 빈공과(賓貢科)[당나라의 과거 제도로, 외국인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여 관리로 선발하는 제도]에 합격하였다. 제보자 최수걸은 경주최씨의 후손으로 최치원에 대한 내력을 잘 알고 있었다. 최치원이 중국에서 어린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고, 그곳에서 큰 업적을 남겨서 중국 사람들이 4월 15일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지산마을에 사는 후손들도 최치원의 영정을 모신 지산재(芝山齋)에서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모든 음식을 생식으로 한다.

[모티프 분석]

「최치원과 지산재」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지산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최치원의 내력과 지산재에서 지내는 최치원 제사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경주최씨 후손들은 지산마을의 지산재에서 최치원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데, 제물은 생식으로 올린다. 최치원에 대한 마을제사와 관련한 설명적 이야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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