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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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利信 |
이칭/별칭 | 석락(錫洛)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대길 |
[정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석락(錫洛). 판서 두계(杜溪) 김충유(金冲裕)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김이신(金利信)[1893~?]은 경술국치 이후 원통함과 슬픔을 참지 못하고,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국내의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백일 또는 삼칠일[21일] 기도를 하는 등 오랜 동안 전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뜻을 같이하는 7~8명의 동지들과 함께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고, 7척의 넓은 베에 크게 쓴 기를 만들었으며, 나팔과 큰 칼 및 쇠창 등의 무기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또한 천문지(天文誌)와 지도(地圖) 또는 음양진(陰陽陣)과 문무도(文武鞱) 등의 병서(兵書)를 연구하는 등 독립운동의 뜻을 굳게 세웠다. 불행히도 1938년(戊寅) 봄에 이것이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3년간 갖은 고초를 당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되었으나 남북으로 분열되니, 백마산(白馬山)에 한 칸의 흙집을 짓고 민족 통일과 평화를 밤낮으로 기원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성렬(李成烈)이 찬한 행장이 있다. 원제는 「고사인 김공이신 실행(故士人金公利信實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