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7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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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집필자 | 김월덕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2월 2일 - 「솟금산 전설」 정영수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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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2월 4일 - 「솟금산 전설」 하순덕으로부터 채록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2월 6일 - 「솟금산 전설」 김영이로부터 채록 |
관련 지명 | 마이산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
채록지 | 운교리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
채록지 | 동촌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
채록지 | 강정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
성격 | 지명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암 마이산[암 솟금산]|수 마이산[수 솟금산] |
모티프 유형 | 여자의 발설로 인한 부정|크다가 멈춘 산|좌절한 산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서 솟금산에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진안군 일대에서 전해오는 「솟금산 전설」은 진안군의 대표적인 산인 마이산의 형성 유래에 얽힌 설화이다. 산 이름은 마이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진안 지역에서는 솟아오른 산의 형상에서 비롯된 상상력을 바탕으로 솟금산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 암수 솟금산이 새벽에 비밀리에 서로 커 올라가다가 새벽에 물 길러 나온 여자의 발설로 부정이 타서 더 이상 크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솟금산 전설」 이야기는 한국학 중앙 연구원 어문 생활 연구소와 안동 대학교 민속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 개정·증보 사업’ 전북 조사팀이 2010년 2월 2일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주민 정영수[남, 80], 2010년 2월 4일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주민 하순덕[여, 80], 2010년 2월 6일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주민 김영이[여, 77]로부터 각각 채록하여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지원하는 한국 구비 문학 대계 웹 서비스에 「마이산의 옛 이름 솟금산」, 「여자 때문에 더 크지 못한 솟금산」 등의 제목으로 수록하였다. 웹 서비스에서 조사 자료 텍스트와 연동되는 디지털 음원을 들을 수 있다.
[내용]
부부인 암수 솟금산이 비밀리에 커 올라가기로 하였다. 암 솟금산은 새벽에 크자고 하고 수 솟금산은 밤에 크자고 하였는데 암 솟금산의 요구를 따라 두 산이 새벽에 커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물을 길러 나온 여자가 산이 커 올라가는 것을 발견하고 “산이 크고 있다”고 소리치자 부정이 타서 두 산이 크기를 멈추고 주저앉아 버렸다. 암 솟금산 말을 들었다가 여자에게 들켜서 못 크게 되었다며 수 솟금산은 화가 나서 암 솟금산을 발로 차 버렸다. 그래서 암 솟금산이 지금처럼 돌아앉은 형상이 되었다고 한다. 두 산이 그대로 커 올라갔으면 그 자리가 서울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솟금산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여자의 발설로 인한 부정(不淨)’과 ‘크다가 멈춘 산’, ‘좌절한 산’이다. 새벽에 물 길러 나온 여자가 두 산이 크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발설하는 바람에 부정이 탔다는 데서 여성을 부정의 요인으로 보는 민간적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솟금산이 더 컸으면 서울이 되었을 것이라는 데서 왕도가 되지 못하고 좌절한 산 모티프가 나타난다. 산이 커 오른 곳이 서울이 된다는 발상에는 주변의 한계를 부정하고 중심을 지향하는 지역 전승자들의 현실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산의 형상이 잘 보이는 지역일수록 산의 외형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이야기도 간략해진다. 우뚝 솟아오른 산의 독특한 형상에 대한 인상이 설화의 형성과 전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