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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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鎭華 |
영어공식명칭 | Lee Jin-hwa |
이칭/별칭 | 영춘(永春),동진(同塵)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현라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 이진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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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3년~1930년 - 이진화 밀양공립보통학교 재직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대 - 이진화 출판사 동화당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대 - 이진화 동진학원 설립 |
출생지 | 암전리 -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암전리 |
활동지 | 동진학원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376 |
성격 | 소설가|교육자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동진학원 설립자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교육자.
[가계]
이진화(李鎭華)[1889~?]는 1889년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암전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영춘(永春)이다. 이진화는 스스로를 낮추어 호를 동진(同塵)이라 하였다. 노자(老子)의 삶을 말하면서 ‘빛에 화답하고 티끌과 함께한다[和其光同其塵]’라고 한 데서 가져와 ‘진리에 화합하고 민중과 함께한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활동 사항]
이진화는 1923년부터 1930년까지 밀양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이진화는 일제강점기 한국의 청소년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신교육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1930년대에 밀양시 내일동에 동화당(東華堂)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였고, 1940년대에 자신의 호를 따서 밀양시 내일동에 옛 동헌(東軒)의 정문인 응향문(凝香門)을 헐어서 동진학원을 설립하여 밀양 지역의 문명개화를 선도하였다. 동진학원은 광복 후 동진고등공민학교(同塵高等公民學校)로 존속하다가 6·25전쟁을 전후하여 폐교되었다.
[저술 및 작품]
이진화의 저서로는 동화당에서 출간한 『현진경(玄眞鏡)』[1932]과 『자연경(自然鏡)』[1939]이 있다. 이 두 책에서 이진화는 조선의 부도덕한 상황을 비판하며 사회제도를 정비하고 각종 기구를 설치한다고 하여 사회의 안녕, 질서를 도모할 수 없으며 근본 문제인 심령(心靈)을 자연의 도(道)로 인도하여 악사(惡事)를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일제가 1930년대 중반 조선인들의 사상 안정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상 선도와 정치적 교화를 목적으로 정신교육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것과 맞물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은 암울한 현실을 신비주의에 의탁하여 풀려는 경향과 맞닿아 있다. 이진화는 당시 조선인들의 답답한 사회 현실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두 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