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T0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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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최이순 할머니의 놀이 이야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
집필자 | 서정섭 |
여가 생활
옛날에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특별히 날 잡아서 놀거나 별식을 해서 먹고 하지를 못했다. “촌에서 그럴 새가 어디 있어요. 자석들허고 먹고 살기도 힘든디.”라고 말한다. 지금이야 쌀밥이 흔하니까 그렇지 전에는 식량이 귀해서 죽을 끓여서 먹었다. 일꾼들도 죽을 끓여서 좀 되죽한 것을 주고 나머지는 멀건 죽을 먹었다. 정지꾼들은 멀건 죽을 먹었다. 봄에는 쑥을 캐서 쑥죽을 끓이고 나물도 캐서 나물죽을 끓여서 먹기도 했다. 여름에는 밀 농사를 지으니까 밀을 확독에 넣고 갈아서 풀떼죽을 만들어 먹었다. 풀떼죽에다 하지 감자 몇 개를 썰어 넣어서 끓였다. 상에는 좀 나수 올려주고 나면 정지꾼들은 멀건한 물만 남아 그것을 먹어야 했다. “전에는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든지, 전에는 흐연 쌀밥 먹는 법이 있었간디?”라며 할머니 세대가 가장 힘든 세상을 살았다고 한숨을 쉰다. 왜정시대를 보내고 6·25 전쟁을 겪었다. 보릿고개 시절을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하다고 말한다.
친구 관계
할머니가 어렸을 때 왜정 시대에는 여자들이라고 학교도 안 보내 글도 배울 수가 없었다. 집에서 겨우 국문 좀 깨우쳐서 자기 이름 석 자 쓸 정도밖에 안 됐었다. 여자들이 공부해서 글을 쓸 줄 알면 시집살이가 힘들다 어떻다 라고 편지를 써서 보낸다고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그 당시는 학교 가는 대신에 집에서 일 하고 나물 캐서 죽 끓여먹고 살았다.
“클 때 친구들은 결혼한 후 갈려지고(헤어지고) 나서는 통 만날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생각은 나지만 각자 사느라고 만나지지가 않는다.
노래 /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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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귀남 할머니
여기 사람들은 일 욕심만 많아서 일할 때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일만 한다. 그래서 노래는 잘 모른다. 길쌈할 때도 품앗이를 해서 일을 하지만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집에서 직접 옷을 만들어 입었다. 밭에 삼을 심어서 삼베옷을 해 입거나 미영을 심어서 물레에서 실을 뽑아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추운데 헐벗어서 살 수가 없었다. 낮에는 들에 가서 일하고 밤에는 길쌈하고 예전에는 참 힘든 생활을 했다. 그래도 그때는 젊었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밤에 베를 짜는데 지금은 전깃불이지만 그때는 털미신짝을 벽에 달아놓고 거기에다가 호롱불을 얹어놓고 베를 짰다. 그런데 최이순 할머니는 밤베를 못 짰다고 한다. 왜냐하면 호롱불 밑에서 베를 짜면 베틀의 베올에 진그림자가 어른거려서, 눈이 어른거려서 밤에는 베를 짜지를 못했다고 한다. 밤에 베를 못 짜니까 시어머니는 마음이 급해져서 “아이고, 앞집 화정덕은 베를 짰단다. 꾸리 두 개는 짰겄다.”라고 이야기를 하시지만 할머니는 밤에는 베를 짤 수가 없었다고 한다. 대신에 낮에 베를 짜면 삼베같은 경우는 질금질금 짜면 한 필을 짜는데 밤에는 조금도 짤 수가 없었다.
“봄에는 낮은 질고 베를 짜면 너무 제워 가지고(힘이 들어서) 씰룩씰룩 했어요. 베를 짜고 물을 질로 가먼 그때는 젊었어도 다리가 힘이 없어서 허방을 짚는 것 같았어요. 아래토리가 다리가 후둘후둘 해서 다리가 자꾸 어먼 디를 짚는 것 같았어요. 사람이 넘어질려고 해요.”
할머니가 클 때는 크내기들이 한 열 명 정도 되어서 다 모이면 이간장 방으로 하나 가득찼단다. 다들 모여서 쩔름질도 하고 놀았는데 헤어지고 난 후는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만나지지가 않는다고 한다. 쩔름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실로 옷을 짜는 뜨개질을 말한다고 설명해 주셨다.
어릴 때의 놀이는 깍쟁이돌림, 기와밟기를 했었다. 깍쟁이돌림에서 깍쟁이는 간장 종지 정도의 작은 그릇을 말한다. 작은 종지 그릇을 이용해서 놀이를 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방안에 빙 둘러앉아 있고 중앙에 술래가 앉는다. 사람들이 무릎을 세워서 앉아 있으면서 무릎 밑으로 옆 사람에게 깍쟁이를 돌린다. 그때 술래는 깍쟁이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알아맞히는 놀이이다.
기와밟기는 지와볿음이라고 하는 놀이인데 사람들이 마당에 차례차례 쭉 엎드려 있으면 한 사람이 엎드려 있는 사람의 등을 밟고 지나가면서 “지와볿자, 지와볿자” 라고 노래를 부르는 놀이이다.
일제 강점기 때 처녀 공출에 대한 경험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일정시대 때는 크내기들이나 젊은 각시들을 일본으로 잡아간다고 난리가 났어요.”라며 서두를 시작한다. 젊은 처녀들을 모아서 훈련을 시킨 후 일본으로 데려갔다. 최이순 할머니는 그 당시 나이가 어려서 훈련에는 참여를 하지 않았지만 언니는 훈련에 참여했었단다. 훈련은 학교 운동장에 집합을 시킨 후 기초 군사 훈련인 제식 훈련을 시켰다. 훈련을 어떻게 했었느냐는 질문에 일본말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서도 “바에쓰멘! 하면 줄을 서서 쭉 앞으로 가고”라고 하면서 일본말로 ‘좌로 돌아가!’, ‘우로 돌아가!’, ‘뒤로 돌아가!’, ‘멈춰!’의 구령 붙이는 모습을 흉내낸다.
당시에 처녀를 일본으로 잡아간다고 하니까 나이가 어려도 조금만 들었으면 총각이 가난하든지 어떻든지 가리지 않고 마구 결혼을 시켜버렸다고 한다.
6·25 때 빨치산들이 처녀를 데려간다고 하니까 그때도 일제 때와 같이 조혼 풍습이 있었다. 장가 못 가고 늙어빠진 사람, 남의 집 사는 사람들도 6·25 때 장가를 많이 갔다고 증언한다.
“인공 때는 내가 18살 먹은 처녀여서 덕성스럽고 그러니까 피난하기가 제일 어려웠네요.”라면서 6·25 때 피난 이야기를 시작한다. 최이순 할머니의 친정은 임실군 강진면인데 여기에는 회문산이 있어 빨치산의 주둔지로 유명한 곳이다. 지리산, 회문산, 덕유산이 빨치산 근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처럼 유명한 곳 중의 하나가 친정인 강진면의 회문산이니 피난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는가.
낮에는 군인들이 돌아다니니까 안 들켜야 하므로 숨어 있어야 하고, 그러면 가슴이 울렁울렁거렸단다. 밤에는 빨치산이 내려오니까 숨어야 하고 그래서 1년 동안을 들잠을 했었단다. 들잠은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없으니까 들에, 산에 가서 숨어서 잠을 자는 것이다. 들에서 잠을 자면 밤이슬이 내려 추우니까 보자기를 둘러쓰고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들에서 보자기를 쓰고 잠을 자니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또 그 당시는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었는데 밤에 흰저고리를 입으면 눈에 잘 띄니까 검은 보자기 하나 둘러쓰고 피난을 갔다. 모기는 달라들지, 춥기는 하지, 정말 고통스러운 생활이었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오래 하니까 집에서 잠을 자는 것이 그리워지고 너무 피곤해서 어떤 때는 들잠을 자러가지 않고 집에 있고 싶어서 투정을 부리기도 했단다. 그러면 부모님은 집에 있는 날 잡으러 오니까 빨리 피난가라고 쫓아내기를 여러 번 했다고 한다. 한번은 집에 있는데 빨치산이 앞집까지 왔다고 해서 부리나케 뒷문으로 나가 담을 넘어 산으로 도망을 갔단다. 그런데 산으로 가는 중간에 밤나무 밭이 있었는데 급히 도망 나오느라 맨발로 나왔다. 맨발인 줄도 모르고 밤나무 밭을 지나왔는데 산에 도착해서 보니까 발이 얼얼해서 혼줄이 났었단다.
진귀남 할머니에게 청하여 노래를 들었다. 할머니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고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지만 이야기는 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이야기의 말미에 작년(2005년)에 KBS 방송국, MBC방송국에서 와 보문장타령을 녹음했다고 하면서 이것이나 녹음하라고 하면서 들려주셨다. 보문장타령은 국문풀이로 알려진 노래이다.
기억니언 지귿리을
기억자로 집을 지어
지긋지긋이 사잤더니
인연이도 달려서
자장발이 되었구나
가갸거겨
가이없는 이내 몸이
거리없이도 되어있네
고교구규
고생하던 우리 낭군
구박하기가 짝이없네
나냐너녀
나려가는 원앙새야
너와 나와 짝을 짖자
노뇨누뉴
노세 놀아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다댜더뎌
다정하던 우리 낭군
구박하기가 짝이 없네
도됴두듀
도둑지켜서 먹는 마음
그대 어이도 몰라준다
라랴러려
날이던 손질 아니면
조선십방도 유람가자
로료루류
노루장화 인개유지에
처처마다 있건마는
마먀머며
맞아 맞아 맞았더니
이 몸 생각이 또다시 나네
모묘무뮤
모질도다 모질도다
한양낭군이 모질도다
바뱌버벼
밥을 먹어도 님의 생각이
목 매이고
보뵤부뷰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이 보고지고
사샤서셔
사시행차 바쁜 길에
중간 참이 늦어지네
소쇼수슈
소슬단풍 찬 바람에
울고나 가는 저 기러기
임을 보면 소식이나
전코 가소
아야어여
아드 담쓱(덤썩) 안은 손이
인정없이도 떨어지네
오요우유
오든 복판에 검은
재주를 내였더니
오즐오즐 춤 잘 춘다
자쟈저져
자주 종종 오시든 님
오시드니 소식조차도 아니오네
조죠주쥬
조별 낭군 저 낭군이
내 낭군인데 자주 오시드니
소식조차도 아니오네
차쳐처쳐
차라리 이리 될 줄 알았으면
한강수야 깊은 물에
풍덩 빠져나 볼 것을
초쵸추츄
초당안에 깊이 든잠
학의 수레에 놀래 깨니
흐르나니 물소래(리)요
카캬커켜
용천읍 도는 칼로
이내 몸이나 베어주게
코쿄쿠큐
클크리도 슬픈 한을
뉘라서 알아줄까
파퍄퍼펴
파토파토 월 파토 하니
누구를 바래고
내가 여기 왔던가
토툐투튜
토지지신이 감동하여
임이나 보게 도와주게
파퍄퍼펴
봐요 봐요 보고 싶어
임의 하용이 보고 싶어
포표푸퓨
폭포수야 흐르는 물에
풍덩 빠져나 볼거나
하햐허혀
한양낭군 내 낭군인데
편지조차도 아니 오네
호효후휴
호엽허게 먹는 마음
단 사흘이 못 가고
임의 생각이 또다시 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