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음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392
한자 禿音面
영어공식명칭 Dogeum-m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수석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왕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독음면 -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지도보기|수석동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 있었던 조선 후기 지방 행정구역.

[개설]

독음면(禿音面)은 조선 후기에 남양주의 행정 명칭으로 나타난다.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1760년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새롭게 편제되어 있으며. 1864년에 간행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지도서』에서 남양주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처음은 50리, 마지막은 70리라고 하였다. 『고려사(高麗史)』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미음진의 옛 지명이 독포(禿浦) 혹은 독음포, 독음진(禿音津), 독진이라고 하여 독음면의 옛 영역이 미음 지역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태종이 종친 및 관료들과 거둥하여 매사냥을 하던 곳이 독음포라고 하였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724년(경종 4) 1월 26일 기사에는 숭릉의 위전(位田)으로 양향청 둔전이었던 독음면의 전답 22복(卜) 6속(束)이 소속되어 있다고 하였다. 『여지도서』의 독음면에는 원호(元戶)가 332호로 남자가 655명, 여자가 922명이라고 하였다. 『여지도서』의 인물 조에는 임진왜란 때 남원성전투에서 순절한 충간공(忠簡公) 임현(任鉉)의 정문(旌門)이 독음면에 있다고 하였다.

[변천]

독음면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수석동에 해당될 것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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