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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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奉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정의]
일제 강점기 서귀포 출신의 항일 운동가.
[활동 사항]
이봉춘(李奉春)은 1914년 당시 중문면 중문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초반 중문리에서 항일 청년 운동을 지도하던 김한정(金漢貞)의 영향 아래 활동하였다. 1931년 11월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봉춘은 부경득의 친구들인 청년 운동가 김한정·안구현·강석만·강인화·윤창석 등과 함께 부대혁 집으로 가서 부친이 아들을 속박함으로써 자살에 이른 것이므로 부대혁이 아들을 죽인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따졌다.
다음날에는 부대혁의 모친 소상 제례가 있었는데 아들 상례는 소홀히 한다고 하며 제례를 방해하였다. 이에 대해 일제 당국은 이들 청년들을 가택 수색·협박·폭력 행위·제례 방해 등의 명목으로 구속하였다. 이는 일제 당국이 평소에 감시 대상이던 중문리 청년 항일 운동가들에 대한 예방 차원의 대응이었다.
그런데 마침 1932년 1월 구좌 지역에서 발생한 해녀 항일 투쟁 처리 과정에서 일제 당국은 도내의 항일 세력을 일망타진하고자 검거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제주도 전역에 걸쳐 청년 남녀 1백 명 가까이 검속되었는데, 이때 앞서 검속된 중문리 청년들도 같이 연루되어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결국 이봉춘은 1933년 2월 28일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징역 6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아 미결 기간 동안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