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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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始興地區干拓事業 |
영어공식명칭 | Siheung Area Reclamation Projec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훈도 |
[정의]
1947년 미국 군정청이 식량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추진한 경기도 시흥 지역의 바다를 막아 육지를 만들었던 일.
[개설]
미국 군정청(軍政廳)은 식량 정책 실패로 민심이 동요하자 쌀 생산 확보를 내세워 전국의 간척 대상지를 물색하였다. 그 일환으로 1947년 10월부터 시흥군 군자면 수인선 주변 간석지 62㏊[62만㎡]를 논으로 바꾸기 위해 간척 사업을 진행하였다. 간척 대상지는 일제강점기에 이미 간척이 추진되어 70%가량 진행되어 있었다. 군정청은 간척 완료 후 연간 쌀 2,000석 수확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역사적 배경]
1946년 이후 미국 군정청은 식량 수급 조절에 실패하였다. 군정청이 나서 미곡 수집에 나섰고 이에 대한 농민들의 반발이 심하였다. 또한 1946년 6월부터는 생필품을 배급의 방식으로 통제했는데, 배급 수량이 적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 원성을 샀다. 미국 군정청은 일제에 의해 추진되었던 간척 사업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식량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널리 알리려고 하였다.
[경과]
1947년 10월 26일 미국 군정청 이재국장 김경진, 토지개량과장 강종무,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장봉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수리조합연합회(朝鮮水利組合聯合會)에서 계획 중이던 시흥군 군자면 구역 내 소위 시흥 지구 간척 사업 기공식을 개최하였다. 미국 군정청은 총사업비 1378만 1306원을 들여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朝鮮京東鐵道株式會社) 수인선 부설 현장 서편에 남아 있는 간석지 62㏊를 간척한 뒤 1년 동안 논으로 개답(開沓)하면, 이후 1년에 2,000석 쌀 수확이 가능하다고 전망하였다.
미국 군정청으로서는 간척 사업의 가능성을 널리 알려 쌀 증산을 통해 식량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고자 하였다. 완공 후에는 전재민(戰災民) 100여 호를 이곳으로 이주시켜 논을 분양하고자 하였다. 간척 사업의 시공은 우익인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이 세운 대동토건회사가 담당하였다.
[의의와 평가]
농경지 확보를 위한 간척의 역사는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서해 갯벌 지역은 식량 확보를 위한 간척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조선 후기에 이루어진 경기도 시흥 지역의 호조벌 간척이 대표적이다. 일제 역시 시흥 갯벌 간척을 통해 수탈할 미곡을 늘리려 했다. 군자 지역 간석지 간척도 그 일환이었다.
미국 군정청은 70% 정도 진척된 간척 사업을 마무리하고 식량 증산을 통해 민심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식량 생산 기지를 위한 일제강점기의 간척을 거치면서 규모화된 간척 사업은 개발 이익을 위한 사업으로 바뀌었다. 대규모 간척은 경기만 일대 염전의 폐쇄로 이어졌으며, 옛 염전은 산업단지와 주거단지로 바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