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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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石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집필자 | 이도남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새겨진 명문(銘文).
[개설]
금석문(金石文)은 쇠로 만든 종이나 돌로 만든 비석 따위에 새겨진 글자나 도형으로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다. 따라서 고대 등 과거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 중에 주로 알려진 것은 비(碑)·묘지(墓誌) 등에 새겨진 문자이다. 비에 새겨놓은 금석문은 대개 사건 당시 또는 그와 가까운 시기의 상황을 기록하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된다. 경기도 양주 지역의 금석문은 비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비는 크게 사적비, 묘비, 선정비, 암각문 등으로 분류된다.
[종류·시대·성씨별 현황]
경기도 양주 지역의 금석문은 대부분이 비문이며 종류별로 보면 각각 묘비가 149기[신도비 39기, 묘갈 65기, 묘표 52기], 사적비가 7기, 선정비가 21기, 암각문 20개소가 있다. 그리고 시대별로는 고려 시대 비가 1기이고, 나머지는 모두 조선 시대에 세워졌으며 삼국 시대 비는 아직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양주 지역이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가 다투던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 시대 이전의 비나 금석문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감악산 정상에 있는 빗돌대왕비는 금석문이 없을 뿐 삼국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이러한 개연성은 높다.
[종류별 주요 비]
묘비는 묘소에 세우는 비갈을 총칭하는 말로 묘표(墓表), 묘갈(墓碣), 신도비(神道碑) 등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묘표는 묘의 봉분 앞에 묘의 주인공을 표시하기 위해 작은 돌에다 새겨 세운 비를 말한다. 묘갈은 죽은 자의 공적이나 사적을 명과 함께 새긴 비로 규모는 신도비보다 작으며 정3품 이하의 벼슬을 지낸 자의 묘에 썼다. 신도비는 보통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에 높은 벼슬[조선 시대의 경우 종2품 이상]을 지낸 사람이 죽었을 때 그 행적을 기록하여 묘 앞길에 세우는 비석으로 주로 생전에 세운 공로나 인품을 기록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1. 묘비
1) 묘표
먼저 묘표의 경우 조선 시대 각 종중의 공동 묘소에는 거의 대부분 원두형 묘표를 사용하였으며, 일부 연잎을 엎어 놓은 모양의 복연엽형 묘표도 나타난다. 양주시 산북동과 덕계동에 위치한 안동 권씨 집안의 권지(權訨) 묘표, 권홍(權弘) 묘표와 마전동에 위치한 광산 김씨 김기서(金基瑞) 묘표, 김수렴(金守廉) 묘표, 회정동에 위치한 박계인(朴繼仁) 묘표, 박수현(朴守玄) 묘표, 박시림(朴時霖) 묘표, 박심(朴竹+尋) 묘표, 박천서(朴天叙) 묘표 등이 대표적인 양주시의 묘표이다.
이외에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에 위치한 여산 송씨 송세진(宋世晉) 묘표, 송송례(宋松禮) 묘표, 송영업(宋榮業) 묘표, 송윤(宋王+尹) 묘표, 송화(宋璍) 묘표와 광사동에 위치한 풍양 조씨 조온지(趙溫之) 묘표, 조팽(趙彭) 묘표 및 남면 상수리의 남양 홍씨 홍경손(洪敬孫) 묘표, 홍춘경(洪春卿) 묘표 등도 대표적인 묘표에 해당한다.
2) 묘갈
다음으로 묘갈의 경우 형식적으로 대부분 원두형과 이수에 농대석을 갖추고 있다. 양주시 산북동에 있는 안동 김씨 권극관(權克寬) 묘갈, 권극례(權克禮) 묘갈, 권극지(權克智) 묘갈, 권정기(權正己) 묘갈과 광적면 가납리에 있는 김병시(金炳始) 묘갈, 은현면 선암리 여산 송씨 송기(宋圻) 묘갈, 송사민(宋斯敏) 묘갈, 송유의(宋惟毅) 묘갈, 송지한(宋之翰) 묘갈, 송희업(宋熙業) 묘갈, 은현면 도하리 용인 이씨 이순악(李舜岳) 묘갈, 이신충(李藎忠) 묘갈, 이영인(李榮仁) 묘갈, 이종유(李宗蕤) 묘갈, 이창형(李昌亨) 묘갈, 남면 한산리 전의 이씨 이해수(李海壽) 묘갈, 율정동 풍천 임씨 임윤석(任允錫) 묘갈, 임중신(任重臣) 묘갈, 임진(任振) 묘갈, 임형(任瀅) 묘갈, 산북동 온양 정씨 정광겸(鄭光謙) 묘갈, 정렴(鄭石+廉) 묘갈, 정민시(鄭民始) 묘갈, 정순붕(鄭順朋) 묘갈, 정원시(鄭元始) 묘갈, 정창사(鄭昌師) 묘갈, 정창유(鄭昌兪) 묘갈, 정척(鄭惕) 묘갈, 광사동 풍양 조씨 조속(趙涑) 묘갈, 조수륜(趙守倫) 묘갈, 조정기(趙廷機) 묘갈, 조흡(趙潝) 묘갈, 남면 상수리 남양 홍씨 홍구택(洪九澤) 묘갈, 홍명일(洪命一) 묘갈, 홍서룡(洪瑞龍) 묘갈, 홍지(洪智) 묘갈, 홍처량(洪處亮) 묘갈, 홍천민(洪天民) 묘갈 등이 대표적인 묘갈에 해당한다.
3) 신도비
끝으로 신도비의 경우 귀부를 갖춘 것, 이수에 농대석을 갖춘 것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양주 지역에서 귀부를 갖춘 신도비로는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의 성희안(成希顔) 신도비, 교현리의 홍숙(洪淑) 신도비, 부곡리의 신공제(申公濟) 신도비, 남면 한산리의 이탁(李鐸) 신도비 등이 대표적이다.
이수에 농대석을 갖춘 신도비로는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안동 권씨 권율(權慄) 신도비, 권철(權轍) 신도비, 회정동 밀양 박씨 박노(朴竹+魯) 신도비, 박율(朴栗) 신도비, 박이서(朴彛叙) 신도비, 광적면 효촌리 백인걸(白仁傑) 신도비, 은현면 선암리 송인(宋寅) 신도비, 송질(宋軼) 신도비, 장흥면 삼하리 전주 이씨 이성구(李聖求) 신도비, 이수광(李晬光) 신도비, 이희검(李希儉) 신도비, 율정동 풍천 임씨 임권(任權) 신도비, 임추(任樞) 신도비, 임호신(任虎臣) 신도비, 임유겸(任由謙) 신도비, 광사동 풍양 조씨 조상경(趙尙絅) 신도비, 조익정(趙益貞) 신도비, 조흡 신도비, 남면 상수리 남양 홍씨 홍계적(洪啓迪) 신도비, 홍서봉(洪瑞鳳) 신도비, 홍처후(洪處厚) 신도비 등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에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여성을 위한 신도비인 남양부부인 홍씨(南陽府夫人洪氏) 신도비가 있다.
2. 기타 비
양주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묘비 종류를 제외한 나머지 비로는 사적비, 선정비 등이 있다. 사적비로는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단경왕후온릉비(端敬王后溫陵碑), 유양동에 있는 어사대비(御射臺碑), 회암동에 있는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양주 회암사 지공선사부도비 등이 있다. 선정비는 양주목사와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관리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 3기, 유양동 양주 관아지에 17기, 불곡산 백화암 경내에 1기 등이 있다.
한편, 양주 지역 비 또는 금석문에서 특이한 점은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시들의 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시들의 비는 양주의 지역적 특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궁궐에서 내관 생활을 하던 내시들이 양주 지역에 토지를 매입하고 부를 축적한 후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는데, 김광택(金光澤), 김선필(金善弼), 백희장(白喜章), 서경달(徐景達), 정중명(鄭重明), 최봉좌(崔鳳佐), 홍명부(洪命富) 등의 내시 묘표가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 있었다.
[주요 각석문]
각석문은 자연 상태의 바위나 벼랑의 평평한 면에 새겨진 글자로 양주 지역의 경우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노고산 계곡과 석현리 돌고개 지역을 비롯한 여러 곳에 다수 분포해 있다. 노고산 계곡에는 가탁천(可濯泉), 독재동(篤才洞), 유마폭(流磨瀑), 미수선생장루지소(眉叟先生杖屢之所)와 추사 필적(秋史筆跡) 암각문이 있다.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돌고개계곡에 있는 바위에는 관서암(觀書巖), 문장동천(文章洞天), 분설담(噴雪潭), 수렴폭(水簾瀑), 쌍류폭(雙流瀑), 옥순암(玉筍巖), 운영담(雲影潭), 임오오월각(壬午五月刻), 천인벽(千仞壁), 탄금대(彈琴臺) 등의 각석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