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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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𥖝 |
이칭/별칭 | 사결(士潔),북창(北窓),장혜(章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운화 |
출생 시기/일시 | 1506년 - 정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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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37년 - 사마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549년 - 정렴 사망 |
묘소|단소 | 정렴 묘 - 경기도 양주시 고덕로 108-60 산92 시장골[산북동 1] |
성격 | 유의|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온양 |
대표 관직|경력 | 포천 현감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유의(儒醫).
[가계]
본관은 온양. 자는 사결(士潔), 호는 북창(北窓). 증조할아버지는 지평 정충기(鄭忠基)이고, 할아버지는 헌납 정탁(鄭鐸)이다. 아버지는 내의원 제조(內醫院提調) 정순붕(鄭順鵬)이다. 어머니는 완산 이씨로 봉양 부정(鳳陽副正) 이종남(李終南)의 딸이다.
[활동 사항]
정렴(鄭𥖝))[1506~1549]은 1537년(중종 3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어려서부터 천문·지리·의서·복서(卜筮) 등에 두루 능통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약의 이치에 밝았는데, 1544년(중종 39) 임금이 병에 걸리자 약을 짓기 위하여 내의원 제조의 추천으로 궁에 들어가 왕을 진찰을 하기도 하였다. 포천 현감을 지냈다. 『을사록(乙己錄)』에는 아버지 정순붕이 1545년(인종 1) 윤원형(尹元衡) 일파가 일으킨 을사사화의 주역으로서 윤임(尹任) 등 대윤(大尹) 세력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자 정렴이 이를 간곡하게 말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학문과 저술]
일상 생활에서 효과를 본 의학 처방을 모아서 『정북창방(鄭北窓方)』을 편찬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이 책은 양예수(楊禮壽)가 지은 『의림촬요(醫林撮要)』에 인용되어 있다.
[묘소]
무덤은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 온양 정씨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장혜(章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