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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217
한자 權節 旌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현석로 413번길 202-50[우고리 45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서동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03년연표보기 - 권절 정려 건립
현 소재지 권절 정려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현석로 413번길 202-50[우고리 450]지도보기
원소재지 권절 정려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현석로 413번길 202-50[우고리 450]
성격 정려

[정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에 있는 충신 권절(權節)의 조선 후기 정려(旌閭).

[개설]

정려란 전통 시대에 국가가 충신·열녀·효자의 행실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해당 인물이 살던 마을 입구 또는 집 앞에 세워 준 문(門)을 가리킨다. 정문(旌門)·정려문(旌閭門)·홍살문이라고도 한다.

권절[1422~1494]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서조(瑞操), 호는 율정(栗亭)이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에 계유정난(癸酉靖難)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귀머거리로 가장하여 참여하지 않았으며,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후에도 대부분 병을 이유로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후대 사람들은 단종을 향한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남효온(南孝溫)[1454~1492] 대신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1708년(숙종 34) 좌의정 이유(李濡)의 건의에 따라 정2품에 추증되었고, 1791년(정조 15) 창절사(彰節祠)에 봉안되었다.

[변천]

1703년(숙종 29) 권절의 충절을 기려 정려가 내려졌다.

[현황]

권절 정려의 정식 명칭은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의금부사 홍문관 대제학지춘추관·성균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세자좌빈객 행집현전 교리 증 시 충숙공 권절지문(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使弘文館大提學知春秋館成均館事五衛都摠府都摠管世子左賓客行集賢殿校理贈諡忠肅公權節之門)’이다.

[의의와 평가]

경기도 양주 출신인 권절의 정려를 통해, 조선 조정에서 국가에 대한 충절을 강조하고자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던 권절에게 정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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