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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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火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배정옥 |
도구 제작|사용 시기/일시 | 고려 말 - 최무선 화약 제조 성공, 화통도감을 설치 화포 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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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제작|사용 시기/일시 | 1380년 8월 - 최무선 진포대첩에서 화포 사용 승리 |
전시처 | 영천민속관 -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288-4 |
성격 | 무기 |
용도 | 전쟁 |
[정의]
고려 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 최무선(崔茂宣)이 제조한 무기.
[개설]
화포(火砲)의 역사는 고려 말 최무선의 화약 제조 성공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화약이 발명된 이후에 ‘대형 총통 속에 화약을 넣고 돌덩이를 쏘는 포’라는 뜻으로 화약을 이용하는 모든 포를 화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영천 출신인 최무선은 고려 말 무신으로서 화통도감(火筒都監)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화포를 개발하기 시작하여, 대장군포(大將軍砲)·이장군포(二將軍砲)·삼장군포(三將軍砲)·육화석포(六花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筒)·화전(火箭)·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질려포·철탄자(鐵彈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유화(流火)·주화(走火)·촉천화(觸天火)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무기를 개발하였다.
최무선이 제작한 고려의 화약 무기는 세계적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화약의 개발은 중국에 비해 600년 이상 늦었지만 대표적 화약 무기인 화포는 중국 못지않았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포인 ‘원나라 지순 3년(1332) 동포’에 비해 40여 년 정도 늦을 뿐이다.
[연원 및 변천]
임진왜란 최대의 승전지인 한산대첩[1592년]이 있기 200년 전에 최무선이 이끈 진포대첩은 100척으로 왜선 500척을 격파한 기념비적인 승리를 거둔 전투였다. 숫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화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에 TV 프로그램 「역사 스페셜」에서 최무선의 화포를 집중 조명하였으며, 유물 자료와 문헌을 통해 화포를 입체적으로 고증하고, 사상 최초로 직접 제작하여 시험 발사하였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 원장이자 현 연구위원인 채연석 박사는 경희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경희고소총통, 2004년 발견된 고려 총통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병기도설』·『세종실록』 등의 화포 제작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최무선 당대의 화포를 추정 설계하고, 모형 뜨기·주물 제작·시험 발사 등 전 과정을 감독하였다. 당시에 복원 제작된 화포는 영천시에 기증하였고 현재 영천민속관에 전시되어 있다.
[형태]
화포는 화약이 발명되기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며, 화약을 사용하게 된 이후와는 그 뜻이 다르다. ‘포’는 돌을 멀리 던지는 기계인 투석기를 말하는데, 화포는 불덩이를 멀리 던지는 기계를 뜻한다.
구조를 보면, 4개의 나무기둥 위에 둥근 나무 축을 가로 누이고 축의 중간에 긴 장대를 꿰어 돌릴 수 있도록 한다. 장대의 한쪽 끝에는 긴 밧줄이 여러 개 묶여 있고, 반대쪽에는 불덩이를 올릴 그릇을 붙인 것이다. 긴 장대를 팽팽히 당겼다가 탄력을 이용해 돌이나 불덩이를 발사하는 원시적 형태의 무기이다.
이에 반해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는 오늘날의 대포나 기관총 모양으로 이동이나 사격이 훨씬 간편하며 적중률도 높은 현대식 무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