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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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彦根 |
영어공식명칭 | Seong Eon-geun |
이칭/별칭 | 숙회(叔晦),가은(稼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학자.
[개설]
성언근(成彦根)[1740~1818]은 진사 출신으로 영주 지역에 머물면서, 시국 현안과 관련된 각종 상소문을 썼다.
[가계]
성언근의 자는 숙회(叔晦), 호는 가은(稼隱), 본관(本貫)은 창녕(昌寧)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세찬(成世瓚), 할아버지는 성경인(成景寅), 아버지는 성설(成渫)이며, 어머니는 박천주(朴天柱)의 딸 무안박씨(務安朴氏)이다. 부인은 변국관(邊國觀)의 딸 원주변씨(原州邊氏)이다.
[활동 사항]
성언근은 1740년(영조 16) 경상도 순흥도호부 가고리[지금의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단정하고 총명하였으며, 아버지를 여읜 후에는 할아버지에 의해 양육되었다. 1777년(정조 1)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1783년에는 채제공(蔡濟恭)[1720~1799]을 찾아가 정자인 계서정의 기문을 요청하였다. 1787년(정조 11) 문효세자가 갑자기 죽자, 왕대비가 성균관의 각도 유생에게 언교를 내려 상소를 올리라 하였는데, 이때 성언근이 영남 유생의 상소를 지었다. 정조 연간 시파(時派)로 활동하였으며, 사도세자 신원을 청원하는 상소문의 소수(疏首)로 추대되었다. 1800년(정조 24) 정조가 사망한 후에는 세상일에 초연해 하며 고향에서 후진을 가르치는 데 매진하였다.
성언근은 소수서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여러 생도를 가르쳤으며, 1804년(순조 4)에는 소수서원의 동재인 일신재(日新齋)를 지었다. 1813년(순조 13) 채제공의 문집인 『번암집(樊巖集)』 간행 때 순흥 지역 장로(長老)로 참여하였다.
[학문과 저술]
성언근의 문집으로 『가은집(稼隱集)』이 전하는데, 산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 놓은 시문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묘소]
성언근의 묘소는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성언근의 행장은 이인행(李仁行)[1758~1833], 묘갈명은 권연하(權璉夏)[1813~1896]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