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군
-
경기도 용인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그리스정교)와 더불어 기독교 3대 교파 중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에는 루터교(Lutheran), 개혁교회(Reformed Church), 장로교(Presbyterian), 성공회(Anglican, 聖公會), 침례교(Baptist), 감리...
-
일제강점기 용인군 고삼면에 있었던 광산. 고삼면 광산은 원삼면 광산과 함께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에서 운영된 대표적인 광산이었다. 당시 고삼면은 1914년 행정 구역이 개편된 이래로 고서면, 고북면, 고동면을 합친 지역으로 경기도 용인군에 편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광산의 위치는 경기도 용인군의 고삼면과 경기도 안성군의 양성면에 걸쳐 있었다. 광산의 소유주는 경기도 안성군...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교육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나 단체. 교육기관은 교육 사업이나 교육 관계 종사자의 연수·보건·권리·후생 등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체이다. 구체적인 것은 법률로 정해져 있으나 좁은 의미로는 학교를 말하며 넓은 의미로는 교육 행정 기관도 포함된다. 따라서 용인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등을 포함하는...
-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남현수는 경기도 이천군 장면 사곡동으로 이주하여 농사를 짓고 살다가, 1907년 이익삼 의병부대에 투신하였다. 이후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에서 활발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남현수는 부대 내에서 군수품 확보에 힘썼던 것으로 보인다. 1908년 윤2월 의병장 이익삼 등과 함께 경기도 용인군 상동면 금현에 진출하여 김종옥으로부터 백미 3석...
-
경기도 용인군에서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대항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특동대의 대장. 본관은 여흥이며 농사를 짓던 부친 민영복의 5남매 중 둘째이며, 봉화 금씨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다. 1926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935년 아버지를 따라 용인으로 이사하였다. 용인보통학교 2학년으로 전입학하여 1941년 3월 졸업하고 가사일을 도우며 강의록을 공부하였다. 18세...
-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박춘식은 경기도 용인군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1907년 7월 김봉기 의병부대에 들어가 군자금 확보와 의병 모집 활동을 벌였다. 그는 동료 의병과 함께 광주·양천·지평·가평·춘천·횡성·화천·양구 등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양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가평 실운리에 있는 명례궁(明禮宮) 사음(舍音) 집에서 백미 50석을...
-
1991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호동·해곡동의 주민들이 수도권 유류비축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벌인 시민운동. 1970년대에 오일쇼크를 경험했던 정부는 고유가와 유류 소비량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유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한국석유공사는 1990년부터 택지가 아닌 공공 시설 설립이 가능한 경기도 용인시 호동과 해곡동 일원에 250만 배럴 규모의 석유...
-
일제강점기 용인에서 활동한 천주교 신부이자 독립운동가. 안학만은 경기도 안성본당에서 세례를 받고 1909년 9월 예수 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선산본당과 개성본당 주임신부로 활동하였으며, 1924년 경기도 용인군의 앞고지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안학만은 천주교 신부로서 사목 활동을 하는 가운데 틈틈이 신자들과 지역 유지 및 학생들...
-
1933년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양지리에 선정된 갱생지도부락.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 말 농업 공황으로 농촌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일환으로 1930년대 들어 농촌진흥운동을 실시하였으며, 농촌경제갱생계획에 따라 갱생지도부락을 선정하였다. 관제기구로 농촌진흥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각 읍면별로 30~40호 단위의 갱생지도부락을 선정하여 5년 기한의 농가경제...
-
1399년(정종 1)부터 1895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본래는 수주(水州)에 속해 있던 양양촌부곡(陽良村部曲) 또는 양량부곡(陽良部曲)이었다. 1399년(정종 1) 군현제 정비 과정에서 부곡을 현으로 소속시키면서 양지현으로 고쳐 처음 감무(監務)를 설치했다. 1413년(태종 13) 양지현감을 파견했고, 읍치를 광주의 임내(任內)인 추계향(秋溪鄕)으로 옮겼다....
-
조선 중기 조신이 양지현에서 머물며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조신(曹伸)[?~?]의 문집인 『적암유고(適庵遺稿)』 권1에 전하는 작품으로, 원 제목은 「서헐양지전계(書歇陽智前溪)」이다. 양지현(陽智縣)은 경기도 용인군 동부를 차지하고 있던 옛 행정구역으로, 1914년에 용인군에 통합되었다. 양지현 앞에 흐르는 냇가에서 쉬며 객회(客懷)를 토로한 작품으로, 봄날...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용인시의 역사. 용인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이래의 변화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 등장했다. 오늘날 용인시의 영역이 형성된 것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용인군과 양지군, 죽산군의 일부가 통합됨으로써 그 모태가 마련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은 지역 내외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오는 가운데 형성된...
-
1995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건립된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탑. 3·1운동 당시 경기도 용인군에서는 1만 3200명이 궐기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경찰과 헌병대의 폭압으로 사망 35명, 실종 139명, 상해 502명, 수형 65명 등 741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그 밖에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1905년의 을사늑약을 전후하여 용인에서는 관내에서...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군에 조직된 축산 조합. 일제가 소의 증식과 개량을 통해 식민지 수탈을 꾀할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1911년에 경기도 개성군에 축산조합이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1913년 시흥군·포천군·광주군·파주군에 설치되었고 1915년 용인군 외 14개군에 설치되었다. 이후 경기도 지역에 설립되었던 20여 개의 축산조합은 「조선중요물산동업조합령」에 따라 축산동업조합으로 조직...
-
경기도 중앙에 위치한 시.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의 두 고을을 합쳐 용구에서의 ‘용’자와 처인에서의 ‘인’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옛 용인현(龍仁縣)·양지현(陽智縣)과 죽산도호부(竹山都護府)의 일부가 합해 이루어진 시이다. 용인현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멸오현(滅烏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거서현(巨黍縣)으로 이름...
-
경기도 용인시에서 결성된 청년계몽운동 단체.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청소년들의 집단 활동을 통해 생산과 교육, 운동과 무술 연마를 도모함으로써 슬기와 용기, 불굴의 기백과 멋을 가꾸어 안으로는 수신의 기풍을 다지고 밖으로는 지역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양성해 왔다. 삼한의 두레, 고구려의 경당, 신라의 화랑도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용인청년회는 1920년대 결성된 청년단체로, 전신인 갑성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야학활동과 계몽활동을 전개했다.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역량이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과 계급을 막론하고 확대되는 분위기 속에서, 용인의 중추기관이 되어 신사상운동에 주력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4년 3월 유재헌(劉載獻) 등에...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조직된 학교 조합. 일제가 일본인 아동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용인학교조합은 1913년 4월 경기도 용인군 지역에 사는 일본인 아동들을 위하여 설치되었으며, 5월에는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김량장리에 용인공립심상소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는 한국 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위해 1912년 학교조합령을 제정하고 학교조합을 공적기관으로 보...
-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우수안은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어매동에 거주하는 농부였다. 한일의정서 체결과 고문 정치로 대변되는 한일협약이 체결되어 일제의 정치·군사적 간섭이 강화되던 시기에 의병 활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당시 경기도 용인군 지역에서는 일본군 군수물자 수송을 위한 경의선·경원선 철도 부설 추진과 이에 따른 인력 강제동원이 행해지고 있었는데, 이에 저항하는...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에 있는 원삼면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4개 행정동, 6개 면 중 원삼면 주민의 일상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원삼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할때 원...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송전리에 있는 이동읍 관할 행정 기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1읍 4동 6면 중 이동읍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최 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이동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895년 기존의 상동촌면과 하동촌면을 합쳐 이동면...
-
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약한 의병. 이윤빈은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갈월리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며 지내던 중,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경기도 용인군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약하였다. 1909년 11월 19일 동료 정기인(鄭基仁) 등과 함께 경기도 광주군 상동막리 이장 허성습(許性習)과 실촌면 상열미리 이장 강성유(姜性有)로...
-
일제강점기 용인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이은표는 1919년 3·1운동 당시 황경준(黃敬俊)·최상근(崔相根)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3월 21일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사무소 앞에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주도하였다. 오전에 시작된 시위는 밤까지 계속되었으며 밤에는 인근 구봉산·독조산·수정산 등지에서 봉화를 올...
-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장. 이익삼은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된 이후 경기도 용인군을 근거지로 광주·죽산·양성 등지를 넘나들며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부하 30~40명과 함께 친일파에 대한 징치, 일본 경찰 습격, 빈민 구제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07년 11월 일시적으로 관(官)에 자수하였으나, 다시 봉기하여 활약하다가 1909년 6월에 다시 붙잡...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인하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이은표(李殷杓)와 함께 시위를 계획하고 3월 21일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운집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앞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대를 이끌었다. 시위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으며 밤에는 봉화 시위를 전개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밤 10시경에 출동한 일본...
-
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이하경은 경기도 양평군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08년 경기도 용인군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동료 6~7명과 함께 경기도 용인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 마련에 힘썼다. 그는 경기도 용인군 신원리(新院里)·자미리(自味里)·능동(陵洞) 등을 중심으로 활약하다가 붙잡혀 3...
-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기도 용인의 역사. 경기도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서울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중앙의 정치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는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의병 운동, 물산 장려 운동 등과 같은 반일 민족 운동이나 소년 운동, 청년 운동 등과 같은 반봉건적 근대화...
-
일제강점기 용인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삼(聖三), 호는 관란(觀瀾). 초명은 정동로(鄭東魯)이다. 정관해는 경기도 용인군 지역을 중심으로 후학 양성과 전통 고수에 힘쓴 유학자로서, 일제강점 직후인 1912년부터 해방 공간인 1947년까지의 한문 일기를 남기고 있다. 일기를 통해 신식 교육의 도입으로 인성 교육을 강조하였던 전통 교육이 무너짐을...
-
조선 말기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정대준은 경기도 용인군의 대표적인 의병부대였던 정주원 부대에 투신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의병 활동을 알 수는 없으나, 정주원 부대에 속했던 죽산 출신 의병 신현구[1878~1909] 등과 함께 1909년 6월 3일에 경기도 죽산군 서삼면 시암장 내 여인숙 김운선 집에 들어가 일본인 중원방길(中...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설립되었던 운송회사. 중앙자동차주식회사는 경기도 용인군에 본점을 둔 4개의 근대식 회사 중 하나로, 여객과 화물 운송을 담당하였다. 1930년 1월 25일 송재구(宋在龜), 남상학(南相鶴), 박복녀(朴福女), 이원익(李源翊) 등에 의해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김량장리에 세워졌으며, 자본금 65,000원을 기반으로 한 주식회사의 성...
-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교육 기관. 청년훈련소는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기 위해 일본어 등 기초적인 교육을 실시할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청년훈련소는 원래 서울을 비롯한 인천·개성 등지에서 일본인들의 제국재향군인분회장(帝國在鄕軍人分會長)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 말기에 들어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청년훈련소를 개설하게 되었다. 경기도...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상근은 1919년 3·1운동 당시 황경준(黃敬俊)·안명옥(安明玉)·김은수(金殷秀)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1일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사무소 앞에 모인 수많은 면민들을 이끌고 시위를 주도하였는데, 시위대는 원삼면사무소와 문촌·고양리 등을 돌면서 크게 불어났다. 시위는 밤까지 계속되어 인근 산에 봉화를 올리며 야간 시위를 벌...
-
1975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 건립된 호국 영령 추모탑. 현충탑은 6·25전쟁 중 전사한 군인 627위, 경찰 14위, 군속 38위 등 679위의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진 탑이다. 현충탑은 1,658평의 대지 위에 높이 15m, 기단부 15m 규모의 콘크리트 재질로 만들어졌다. 현충탑은 경기도 용인시 출신의 모뉴먼트 작가인 이일영 화백이 제작하였다. 현충탑은...
-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홍금만은 1907년 7월 19일 정철화 의병부대가 마을을 지날 때, 부대의 짐꾼으로 역할하면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경기도 죽산, 충청도 충주·청주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충주 방여탄에서 일본군과 교전할 때 부대와 떨어지게 되어 일시 귀향하였다. 그러던 중 1908년 2월 경기도 용인군 출신의 의병 박춘식의 권유를 받고 유태수·송금봉과 함...
-
일제강점기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경준은 1919년 3월 21일 이봉현(李鳳鉉)·김영달(金永達)·김성남(金性男)·이은표(李殷杓)·이용환(李容煥)·최상근(崔相根)·안명옥(安明玉)·김은수(金殷秀)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그는 산봉우리마다 봉화를 올리는 등 준비를 갖춘 후 이 날 새벽 횃불을 들고 주민 200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