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C0300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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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Baegosimnyeon Jeontongui Baegamjang |
영어의미역 | Baegamjang Market's Tradition over 150 Years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순석 |
백암장 은 백암면 백암리에 개장하는 정기적인 재래시장으로, 날짜의 끝에 1, 6이 붙는 날에 주기적으로 열리는 5일장에 속한다.
용인시와 이천시, 안성군을 잇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과거 경상도에서까지 소를 사러 올라올 정도로 큰 쇠전이 열렸던 규모가 큰 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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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 위치도
백암장은 백암장이 서는 곳에는 음식점, 채소가게, 어물전 등 상설시장도 항시 있었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백암장은 용인에서 김량장과 함께 대표적인 장이다. ‘백암’이 ‘배개미’라고 불린 것처럼 ‘배개미장’으로 불렸다.
백암장은 근방에서 가장 큰 쇠전을 갖고 있었다. 소를 사기 위해 경북 영주나 상주에서까지 소상인이 올라왔다고 한다. 쇠전에 가려 빛을 덜 보긴 했지만 싸전 역시 넓은 자리를 차지하면서 장터의 한 축으로 움직였다. 또 백암에서 수확하는 벼의 품질이 좋기로 유명해 멀리 수원이나 광혜원에서까지 장사치들이 찾아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쇠퇴해가는 여느 시골의 장날처럼 난전이 대신하고 있지만, 아직도 백암장은 백암면과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일부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백암장은 15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한다. 영조대 및 순조 32년(1832), 헌종 8년에 만들어진 『읍지』를 보면 지금의 백암장을 ‘배관장’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로 보아 백암장의 역사는 최소한 15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처음의 명칭은 ‘배관장’이었음도 알 수 있다. 1899년에 만들어진 『죽산읍지』에 “백암장터가 있어 매 1일과 6일에 장이 선다.”고 기록되어 있다. ‘배관장’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배개미장’이라고 불려졌는지는 확인할 길 없다. 지금도 ‘배개미장’, ‘백암장’이라는 명칭으로 함께 사용된다.
지금의 백암장이 열리는 위치는 본래는 논이었다. 청미천 하천 옆으로 413번지, 428번지 일대에 이어지는 6층 건물 주변이 본래 싸전마당이었고, 그 옆으로 닭전 골목과 떡전이 형성되어 있었다. 쇠전은 지금의 백암경로당 앞이었다. 지금의 장터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게 되고, 점차 번화해지면서 장터도 지금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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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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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 건너편에서 본 백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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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건너편에서 본 백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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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원삼농협미곡종합처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