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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539
한자 泗泚樓
영어공식명칭 Sajaru
이칭/별칭 사비루,배산루,개산루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3[쌍북리 678-2]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심상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24년연표보기 - 사자루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19년 - 사자루 이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사자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사자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사자루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사자루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3[쌍북리 678-2]지도보기
원소재지 배산루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 103-7[군사리 564]지도보기
성격 누각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관리자 부여군청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2층 누각.

[개설]

사자루(泗泚樓)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 내에서 가장 높은 서쪽 봉우리에 세워진 2층 누각이다. 사자루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사자루는 ‘사비루(泗沘樓)’로 잘못 부르기도 한다.

[위치]

사자루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3[쌍북리 678-2]에 있다. 바로 조선 시대 송월대가 있던 터이다. 사자루까지는 부소산 관람로로 연결되어 있다. 사자루에서는 백마강 등의 경관이 내려다보인다. 또한, 사자루는 동쪽으로 계룡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구룡평야가 보이고, 남쪽으로 임천의 가림성이 보이고, 북쪽으로 울성산성이 보이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입지에 있다.

[변천]

사자루는 1824년 조선 시대 임천군의 관청 아문(衙門)인 배산루(背山樓)[개산루(皆山樓)로 표기하기도 하였음]로 만들어졌다가, 임천 지역이 부여군으로 통합된 이후 1919년 부소산 내 송월대 터로 이건되었다. 이건되면서 ‘사자루’로 개칭되었고, 2층 누각의 정자 건물로 변경되었다. 사자루를 옮겨 세우면서 터를 다듬을 때 ‘정지원(鄭智遠)’이라 새겨진 백제 시대의 금동석가여래입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형태]

사자루는 관청의 문루를 누각으로 변경한 건물로, 원래 1층 가운데 칸에 문이 설치된 구조였다. 하지만 이건하면서 문을 달았던 자리를 없애고 북쪽 모서리 기둥에 붙이고 나무 계단을 설치하여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건물이 되었다. 부소산의 서쪽 높이 106m의 평탄한 대지 위에 직사각형의 기단을 놓고 주춧돌은 원형주춧돌과 팔각주춧돌을 사용하였다. 처마는 덧서까래를 더 올려 만든 겹처마이고, 지붕은 원래와 같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이다. 사자루에는 편액과 현판이 여러 개 걸려 있는데, ‘사자루(泗泚樓)’라 쓴 편액은 고종의 아들 의왕(義王) 이강(李堈)이 쓴 것이고, ‘백마장강(白馬長江)’은 명필인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쓴 것이다.

[현황]

사자루는 2층 누각으로 올라가 주변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잘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사자루는 원래 관아 문루로 만들어졌다가 2층 누각의 정자로 용도가 변경된 건물로, 조선 시대 후기 관아 문루 양식의 변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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