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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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王興寺址 舍利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기명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37-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윤형원 |
제작 시기/일시 | 577년 - 왕흥사지 사리함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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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발굴 시기/일시 | 2007년 - 왕흥사지 사리함 뱔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6월 29일 - 왕흥사지 사리함 보물 제1767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9년 6월 26일 - 왕흥사지 사리함 국보 제327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왕흥사지 사리함 국보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 |
출토|발견지 | 부여 왕흥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37-2 |
성격 | 사리 장엄구|사리함 |
재질 | 청동제 |
크기(높이) | 10.3㎝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국립부여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제 시대의 청동제 사리합.
[개설]
사리기의 봉안은 일정한 틀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체로 중첩되는 여러 겹의 용기 속에 사리를 안치한다. 사리를 탑 안에 넣을 때 여러 재료의 사리용기를 겹쳐서 사용하고, 안쪽으로 갈수록 귀한 재료로 만든다. 이때 바깥부터 청동제 사리합-은제 사리호-금제 사리병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청동제 사리합은 이 중 가장 바깥에 있는 사리기이다. 왕흥사지 사리함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하여 왕흥사가 위덕왕 대 창건되었다는 사실과 위덕왕 대에 아좌태자 외에 또 다른 왕자를 일본에 사신으로 보낸 사실 등이 드러나 위덕왕 대 역사상을 더욱 선명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형태]
높이 10.3㎝, 너비 7.9㎝인 원통 형태를 보이는 청동제 사리합이다. 2007년 발견 당시 원통형의 몸체 위에 뚜껑이 덮여 있었으며, 뚜껑의 손잡이는 떨어져 나가 있었다. 왕흥사지 사리합 바깥면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새긴 6행 29자의 글자, 즉 ‘정유년이월십오일백제왕창위망왕자립찰본사리이매장시신화위삼(丁酉年二月十五日百濟王昌爲亡王子立刹本舍利二枚葬時神化爲三)’이 새겨져 있다. 명문을 통하여 왕흥사가 600년(법왕 2)에 창건되었다는 문헌 기록보다 23년 앞선 577년(위덕왕 24)에 창건되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597년(위덕왕 44) 일본에 사신으로 보낸 아좌태자 이외에 또 다른 왕자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백제는 성왕 대부터 중국에서 사리 신앙의 영향을 받았고, 위덕왕[창왕]은 일본에 사리와 함께 승려와 장인을 파견하는 등 불교 문화를 통한 국제 교류의 주역이었다. 왕흥사지 사리함은 특히 위덕왕 대 백제 불교 문화의 국제성을 잘 보여 준다. 왕흥사지 사리함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6월 29일 보물 제1767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6월 26일 국보 제327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국보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