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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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命胤 妻 南原 尹氏 |
영어공식명칭 | Yu Myeongyun’s wife Namwon Yun-ss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추모 시기/일시 | 1669년 - 유명윤 처 남원 윤씨 열녀 명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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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686년 - 유명윤 처 남원 윤씨 절행 정판 건립 |
출생지 | 임천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
성격 | 열녀 |
성별 | 여성 |
본관 | 남원(南原) |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열녀.
[가계]
남원 윤씨(南原 尹氏)[?~?]의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윤형성(尹衡聖)이고, 어머니는 이사민(李師閔)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이조참판 유계(兪棨)의 아들 유명윤(兪命胤)과 혼인하여 기계 유씨(杞溪 俞氏)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아들은 유상기(兪相基)이다.
[활동 사항]
유명윤 처 남원 윤씨는 부여 임천(林川)에서 태어났다. 시아버지 유계의 상을 치른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 전주 이씨(全州 李氏)마저 병환으로 사망하자 남편 유명윤이 애통함이 지나쳐 급격하게 몸이 쇠약해졌다. 얼마 뒤 유명윤이 위독한 상태에 이르자 남원 윤씨는 자신의 손가락을 세 개나 잘라 피를 남편의 입에 흘려 넣어 4일이나 연명시켰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669년(현종 10)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의 청으로 남원 윤씨에게 열녀 포장이 내려졌으며, 1686년(숙종 12) 남원 윤씨의 절행을 새긴 정판을 유계의 신도비가 있는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상중와길 74-88[와초리 산96-1]에 건립하였다. 유계의 신도비와 남원 윤씨의 절행 정판은 ‘유계신도비및남원윤씨절행정판’이라는 명칭으로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