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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489
한자 天安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문철영

[정의]

고려 시대 930년(태조 13)에 도솔의 땅을 합해 만든 행정 구역.

[개설]

백제에 기원을 두고 있는 직산·목천과는 달리 천안군의 출발은 고려 건국 이후였다. 고려 시대 천안 지역은 천안부와 그 영현인 풍세현과 직산현, 그리고 청주의 목주(木州)가 있었다. 930년(태조 13)에 삼국의 전략적 요충지인 동서 두솔(兜率)을 합해 천안부로 하고 도독을 두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태조 왕건이 후백제 공략을 위한 군사적 거점 도시로서 930년에 천안도독부를 설치한 것이 천안부의 출발점이다. 이때 태조탕정[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대목악[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사산[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 등 주변 지역의 땅을 각각 분할하여 천안이라는 새로운 행정 구역을 만들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제1권 태조 경인 13년(930)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가을 8월에 대목군(大木郡)에 행차하여 동서두솔(東西兜率)을 합쳐서 천안부(天安府)라 하고 도독(都督)을 두었으며, 대승(大丞) 제궁(弟弓)을 사(使)로, 원보(元甫) 엄식(嚴式)을 부사(副使)로 삼았다.”[秋八月 幸大木郡 合東西兜率 爲天安府 置都督 以大丞弟弓 爲使 元甫嚴式 爲副使.]

[변천]

마한 목지국의 중심이었다고 추정되는 천안은 백제에 병합된 후 직산, 목천 등의 군현으로 편제되었다. 천안의 북쪽에 위치한 직산은 예로부터 백제 온조왕의 치소, 위례성으로 기록되어 있는 지역이었는데, 고려 초에 직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동쪽 편에 위치한 목천은 백제 때 대목악군이며 고려 때 목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조선 930년에 목천이라 하게 된다.

백제에 기원을 두고 있는 직산·목천과는 달리 ‘천안군’의 출발은 고려 건국 이후였다. 태조 왕건이 삼국의 전략적 요충지인 동서 두솔(兜率)을 합해 930년에 후백제 공략을 위한 군사적 거점 도시로서 천안부(天安府) 도독(都督)을 둔 것이 그 출발이기 때문이다. 이때 태조탕정·대목악·사산 등 주변 지역의 땅을 각각 분할하여 천안이라는 새로운 행정 구역을 만들었다. 고려 시대 천안 지역은 천안부와 그 영현인 풍세현과 직산현, 그리고 청주의 목주(木州)가 있었다.

995년(성종 14)에 환주(歡州)라 개칭하고 도단련사(都團練使)를 설치하였다가, 1005년(목종 8)에 단련사를 폐하였다. 이후 1018년(현종 9)에 천안이라 다시 칭하고 지부사(知府使)를 두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다가 1253년(고종 40)에 몽고가 쳐들어오자 강화도로 천도하고, 모든 고을은 해도(海島)로 소개하도록 명령이 내렸다. 이때 천안군도 몽고군을 피하여 선장도(仙藏島)에 들어갔다가 전란이 끝나자 돌아왔다. 1310년(충선왕 2)에 군명을 영주(寧州)라 개칭하고, 1362년(공민왕 11)에 다시 천안부로 복칭되었는데, 별호는 임환(任歡)이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1413년(태종 13)에 천안부영산군(寧山郡)으로 고쳤고, 1416년 다시 천안군으로 고쳐 조선 말까지 계속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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