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571 |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내수 |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지역의 광산 일대에서 사금을 일고 버린 더미에서 금을 채취하던 노동자.
[광산 개발]
천안 지역은 고려 말부터 금의 산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직산 일대는 차령산맥의 줄기를 따라 상당한 양의 금이 매장되어 있었다. 또한 천안 지역에는 석금뿐만 아니라 사금 광산이 다수 존재하여 천안 일대에는 크고 작은 광산이 개발되었다. 직산군 금광 합동 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이 1900년 8월 16일에 대한제국 궁내부 대신 윤정구와 일본 민간인 사이에 체결되었다. 이로써 직산 지역의 금광 채굴권이 일본에 넘어가게 되었다. 한편 1910년 이후 일제는 광구 설정 허가를 갱신하며 광산 채굴권을 연장했고, 여러 광산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직산에는 직산 금광 주식회사, 성환 광업 주식회사 등이 설립되어 사금을 채취하였다. 그리고 성거읍에도 천흥 광산이 설립되었고, 입장 지역에도 중앙 광산이 설립되었다. 입장면 양대리에는 제련소도 설치되었다.
[거랑꾼의 활동]
천안 지역에 수많은 광산이 개발되자 자연스럽게 인구 유입이 이루어졌다. 이들 대부분은 채굴 광부가 되었으나, 광부가 되지 못한 이들은 거랑꾼이 되었다. 거랑꾼은 광산 구덩이에서 파내 놓은 버력에 섞여 있는 쓸 만한 광석을 모으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천안에 다수의 광산이 개발되면서 주변에 버력더미와 웅덩이가 다수 존재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섞여 있는 금을 채취하였던 것이다.
광산이 개발되고 거랑꾼이 늘어나면서 현재의 천안시 사직동 일대에는 금을 사는 노점이 즐비하였다. 이때 주로 거랑꾼이 가져오는 금을 사들이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