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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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田里留王-山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덕전 2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의례 장소 | 산제당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덕전 2리 유왕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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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신제|동제 |
의례 시기/일시 | 매년 정월 초 |
신당/신체 | 산제당|산신도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덕전 2리에서 매년 정초에 농사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덕전리 유왕골 산신제는 본래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모시던 것을 정월 초로 날짜를 옮기었다. 이를 위하여 설을 쇠고 나면 마을의 유지들이 모여 제삿날을 정한다. 이 자리에서 부정이 없고 깨끗한 사람을 대상으로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보아서 조라 직원과 축진원을 선정한다. 조라 직원이란 산신에게 바칠 조라술을 비롯한 제물을 준비하고 제를 주관하는 사람이고, 축진원은 축관을 지칭한다.
선출된 제관은 외출을 삼가고 며칠간 정성을 드린다. 마을에서도 제관의 집은 왕래가 금지되는데 부정한 사람이 출입할 수 없도록 대문 앞에 황토를 편다. 또한 예전에는 마을의 길목마다 왼새끼로 금줄을 쳐서 부정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제사 당일에 외부인이 마을로 들어오면 제가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였을 정도로 산신제에 들이는 정성과 믿음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산신제의 비용은 마을의 공동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물은 한칼에 썬 돼지고기 세 근, 삼색과실, 떡, 메, 술 등이다. 다만 제수 비용이 넉넉한 해는 돼지고기 대신 돼지머리를 쓰기도 하고, 비용이 많이 모이면 통돼지 한 마리를 잡기도 하였다. 또한 산신제에 올리는 술은 조라 직원의 집에서 직접 담근 조라술을 떠서 차린다.
[연원 및 변천]
덕전리 유왕골 산신제의 역사나 유래는 분명하지 않고, 그저 예로부터 내려오는 마을의 전통이라고 한다. 이 마을 산신제는 본래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지냈다. 그런데 마을에서 초상 등 부정한 일이 발생하면 달을 물려서 음력 2월에 제를 지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제삿날을 정월 열흘날 이전으로 정하되 산신 하강일(山神下降日)을 보고 택일하였고, 그것이 관례가 되었다. 굳이 산신 하강일을 고른 것은 그날이 산신이 강림하는 길한 날이기에 산신제를 지낸 것이라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은 참샘으로 불리는 산기슭에 자리한다. 이 제당은 성거산 산신을 모신 곳이다. 예전에는 산제당이 초가여서 매년 가을걷이를 마치면 이엉을 새로 얹었으나 근래에 당집을 중수하여 단칸으로 짓고 기와를 올렸다. 당집 안에 걸려 있는 산신도 앞에 제물을 차리는 제상이 설치되어 있다. 유왕골 산제당이 있는 곳은 산신이 직접 잡아 주었다는 속설이 전해지는데, 그래서 몇 번이나 제당을 옮겼다고 한다.
[절차]
덕전리 유왕골 산신제는 당일 저녁에 지낸다. 제관과 제물을 지고 올라갈 몇 사람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제를 지낸다. 그 절차는 유교식 제례에 따라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은 다음 소지를 올린다. 소지[부정을 없애며 소원을 빌려고 사르는 흰 종이]는 가장 먼저 산신 소지를 올리고, 이어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만동 소지를 올린다. 그러고 나서 제관과 축관의 소지 및 주민들의 소지를 연장자 순으로 불사른다. 이 마을에서는 비단 세대주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아이들까지 모두 올려준다.
[현황]
언젠가는 산신제 당일에 부정한 일이 있어 그해는 제를 지내지 못했는데, 공교롭게도 마을에 우환이 잦았다고 한다. 그 후로는 제를 거르지 않고 해마다 지내다가, 여러 가지 마을 사정으로 1996년부터는 중단되어 이제는 제를 지내지 않는다. 유왕골이 한창 번영하였을 때는 모두 37호가 거주하였지만 1970년대 이후로 외지로 떠나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20여 호 미만의 작은 마을이 된 게 산신제의 중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현재는 산제당만 보존되어 있는데 문화재로 지정하여 재현해야 한다는 지역 사회의 여론도 있다.